"언제든 나가셔도 됩니다"…피투성이 무용극 ‘핑크’ 실험

2025-08-28

“관람 도중 언제든 자리를 떠나거나 도움을 요청하시기를 권장합니다.”

한 현대 무용극에 대한 안내문이다. 공연에 출연하는 무용수들은 “많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이 작품을 만든 안무가조차 “해보니 이런 작품은 당분간 안 하고 싶다”라고 한다.

2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현대 무용 ‘핑크(pink)’는 제목처럼 사랑스럽지 않다. 되려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이날 정식 공연에 앞서 부분 시연된 이 작품은 폭력을 주제로 한 적나라한 표현을 담았다. 무대는 공연 시간 내내 피범벅이다. 8명의 무용수는 몸싸움은 물론 자해, 노출 등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관객에게 친절하지도 않다. 거친 표현으로 관객의 낯선 감각을 자아내고 역설적으로 정화의 순간을 만들어낸다는 연극의 ‘아르토 기법’을 적용했다. 혐오와 대치를 기반으로 한 폭력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한 감각을 마주하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는 의도가 담겼다.

이 작품의 김성훈 안무가는 “‘핑크’는 피의 흔적이고 폭력 이후 피멍이 들었을 때의 상태이기도 하며 개인적으로는 부끄럽거나 입장이 곤란할 때 핑크색으로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라며 “순수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느낌도 있는 색깔이어서 핑크를 제목으로 정했다”고 했다.

김성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으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 아크람 칸 댄스컴퍼니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현대인의 공허한 일상을 그린 ‘조동’, 학교 폭력을 몸의 언어로 담은 ‘그리멘토’ 등의 안무를 했다.

최근엔 서울시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한국 무용 ‘일무’의 공동 안무자로 참여했다. ‘우아한 칼군무’로 정평이 난 ‘일무’와는 전혀 다른 이번 작품을 안무한 데 대해 김성훈은 “이번 작품과 같은 잔혹극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어서 호기심이 있었다”라며 “팬데믹 이후 영상이 더욱 자극적이 된 것도 제작의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잔혹극을 해보니 당분간 안 하고 싶긴 하다”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시도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무용수들은 이 작품을 잔혹하고 기괴한 장면으로 잘 알려진 영화와 비교했다. 배현우는 “이 작품을 하면서 영화 ‘서브스턴스’가 생각났다”며 “개인적으로는 잔인한 것을 싫어한다”라고 했다. 정종웅은 “영화 ‘미드소마’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70분간의 무대는 8명의 남성 무용수가 채운다. 김성훈은 “처음엔 여성 무용수도 출연 예정이었지만 폭력이라는 주제가 젠더 요소로 희석되는 측면이 있어 남성 무용수들만 출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파리대왕』의 서사가 일부 들어있는 것도 남성 무용수들만 참여토록 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파리대왕』은 무인도에서 살아남은 소년들이 서열을 만들며 폭력성과 잔혹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그린 영국 소설가 윌리엄 골딩의 소설이다.

‘핑크(pink)’는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넘는 공연 예술을 선보이는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Sync Next) 2025’ 공연 중 하나다. 이번 공연은 19세 이상 관객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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