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공백기의 씁쓸한 풍경

2025-06-09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오기 이틀 전인 지난 4월 2일,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대광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광법은 광역자치단체 주변의 교통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법이다. 법 개정 이전에는 특별시와 광역시만 혜택을 누렸다. 대광법 개정안이 도청 소재지인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와 동일 교통생활권 지역도 포함되도록 범위를 확대한 덕분에 지방 도시 중에 처음으로 전주권이 포함됐다. 대광법이 적용되면 광역도로와 광역철도, 간선급행버스체계(BRT), 환승센터 등 대규모 교통 기반시설 비용의 30~70%를 국비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지역에는 큰 경사(慶事)다. 전북도는 대광법 국회 통과, 국무회의 원안 의결, 법률안 공포 등 단계마다 보도자료를 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이정표”라고 했다.

법체계 안 맞는 대도시광역교통법

과도한 재정 부담 우려에도 통과

정부가 제 역할 했으면 없었을 일

대광법 개정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1대 국회에서 전주 지역구 여야 의원이 함께 시작했지만 정부와 보수당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정부의 반대 이유는 대광법 취지와 법체계에 어긋나고 비슷한 다른 도시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으며, 과도하게 재정 부담을 초래한다는 거였다. 전주뿐 아니라 수원·창원·청주 등 다른 지방 도시로 대광법 적용이 확대되면 국비 지원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우려가 있었다. 21대 국회 막판이자 윤석열 정부 초기엔 정부의 반대 입장이 흔들리지 않았다. 2023년 3월 국회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당시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대광법) 근본 체계가 너무 흔들리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했고, 당시 김동일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도 “(대광법은) 광역 간 교통체계를 개선하는 게 목적”이라며 “지역 내 교통에 관해서는 다른 법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는 게 맞다”고 했다. 대광법은 결국 상임위를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법안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됐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관부처인 국토부의 반대가 약해졌다. 3월 11일 국토위 소위, 기재부는 계속 반대했다. 강윤진 경제예산심의관은 “법체계가 이미 무너졌다”며 “전주도 들어갔는데 왜 다른 시는 안 되느냐는 얘기가 분명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소위와 13일 국토위에서 법안은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3월 26일 법사위에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다른 대안까지 같이 보자”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법사위에선 자신들의 본업인 체계·자구 검토는 제대로 했을까.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위원장 허락 없이 강윤진 기재부 경제예산심의관이 참석했다며 장관 등 공무원을 혼쭐냈다. 박지원 의원은 “수도권은 배 터져 죽고, 지방은 배고파 죽는다”며 “(대광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국토부 장관을 다그쳤다.

민주당의 거부권 걱정과는 달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원안대로 의결했다. 계엄과 탄핵 이후 무력하게 투명인간처럼 지내야 했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퇴임 직전에 “국토부가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에 투항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16개 광역단체 중 전북만이 광역교통망이 없다는, 그래서 대광법이 힘없는 전북을 차별하는 법이라는 지역 여론은 이해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다른 대안을 무시하고 법체계를 흔드는 입법을 강행한 것이 최선이었을까. 전북도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정치권·도정 협치로 이뤄낸 성공사례”라고 자평했다. 국정 공백기가 아니었으면 보수 정부는 물론, 진보 정부도 설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고백처럼 들린다. 균형발전에 찬성하고, 지방 세수가 지자체 돈줄의 30%에도 못 미치는 ‘3할 자치’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데 동의하지만, 개정 대광법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 어디선가 제 역할을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윤석열 탓이라고 넘겨버리기엔 뒷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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