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두려움은 무지(無知)에서 온다고 한다. 과거 인류가 천둥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현상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늘에 살고 있는 거인이 기침을 하면 그것이 천둥이라던가, 바다의 신들이 싸우면서 태풍이 나타난다고 하는 식으로 자연현상을 앎의 영역으로 끌어오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지난 몇 주간 두려움은 앎에서 왔던 것 같다. 치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중에 원내생 진료라는 것이 있다. 본과 3학년 때부터 치과병원에 상주하며 임상 실습을 진행하는데,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환자에게 진료를 시행하는 것을 원내생 진료라고 한다. 물론 모든 진료 과정을 학생 혼자서 진행하지 않고, 외래 교수님이 옆에서 모든 단계마다 감독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진료가 나아가도록 도와주신다.
졸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임상 케이스를 충족시켜야 하는데, 내 모교 기준으로 가장 구하기 어려운 임상 케이스는 단연 크라운 프렙이었다. 마침 상악 1대구치에 재근관치료 후 다시 씌워놓았던 메탈크라운이 생각나 동기에게 교체한번 해보겠느냐고 이야기했더니,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에 그렇게나 좋은가 싶었다.
하지만, 원내생 진료 당일 유니트 체어에 눕혀져 얼굴에 유공포가 씌워진 순간 두려움은 극도로 커졌다. 진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무지보다도, 이 친구의 크라운 프렙이 생애 처음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앎’으로부터의 두려움이 상당했다. 그리고 술식 중간중간 들리는 외마디 탄성도 나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극도로 배가시켰다.
어찌저찌 치료는 잘 마무리 되었던 것 같다. 레진 시멘트가 치은 연하까지 파고 들어가 중합돼 팔자에도 없던 Root Planing까지 받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 친구도 나와 함께 본과 2년 내내 학교 실습실에서 수 없이 많은 레진치아를 깎아왔던 사이기에 아무렴 실제 치아라고 크게 프렙이 이상해졌을까 싶긴 하다. 그래도 외래 교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오케이 사인을 해주신 게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큰 몫을 했지만.
지르코니아 보철물은 치아에 잘 붙어있다. 교합도 잘 맞는다. 원내생 진료가 모두 끝나고 만족도 조사 종이를 적는데 마지막에 ‘추후 재방문 의사가 있습니까?’ 항목이 있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썼다.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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