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전 트럼프 측이 군복 교체 요구
종전협상 서두르는 美 전략과 엇박자 판단
美 일각 “부끄럽다, 백악관 행태 믿기 어려워”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 셔츠 차림으로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복장을 놓고 미국 일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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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침공 이후 늘 군복 차림으로 공식 석상에 섰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사전 요청으로 군복 대신 사복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군복 차림은 종전협상을 서두르려는 미국의 전략과 맞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 측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며 윽박지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의 협공을 맞고도 2일(현지시간) “미국과 광물 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약소국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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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치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미 백악관 측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할 때 군복을 입지 않는 게 좋겠다고 수차례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군복 대신 이와 유사한 검은 셔츠와 카고 바지를 착용했는데, 이조차도 트럼프 대통령 측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을 짜증나게 한 작은 요인 중 하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장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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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층에선 공개적인 지적이 나왔다. 친트럼프 팟캐스트 채널인 ‘리얼 아메리카 보이스(Real America’s Voice)’ 진행자인 글렌 브라이언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왜 당신은 정장(Suit)을 입지 않느냐. 정장이 있기는 하냐”며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데 많은 미국인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 이러한 논란이 일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전쟁이 끝나면 정장(Costume)을 입을 것이다. 당신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을 수도 있고, 더 좋은 것, 또는 더 싼 것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앞서 2022년 12월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과 2023년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2023년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때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군복 차림이 일각의 논란을 부르긴 했지만, ‘전쟁 중인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현실을 반영한 복장’이란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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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전쟁 상태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과의 연대감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패션쇼를 하러 온 게 아니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도 전쟁 발발 전에는 양복 차림으로 외교 무대에 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회담에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경제 지원이 공식 의제로 논의됐지만, 이 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젤렌스키 회유 논란이 일며 트럼프 비위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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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부자(父子)의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관련 조사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사주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 이 논란으로 미 하원에서 탄핵안이 발의된 바 있다.
당시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나쁜 인상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소셜미디어(SNS)에선 트럼프 측을 비판하는 미국인의 반응도 잇따르고 있다. 틱톡에선 미 퇴역 군인이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는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coachmox8‘이라는 아이디 사용자는 “젤렌스키는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이 쓰레기들은 정장을 입지 않은 것에만 관심이 있느냐”며 “정말 불명예스럽다. 나는 백악관에서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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