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깎이 신화’ 주인공 배소현(32)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올 시즌 첫 승 겸 개인 통산 4승을 달성했다. 지난달 영국으로 다녀 온 ‘골프 여행’이 그의 골프를 한 단계 더 여물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배소현은 3일 강원도 원주시 오로라 골프&리조트(파72·6509야드)에서 끝난 KLPGA 투어 오로라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에서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로 정상에 올랐다. 최종 라운드에서 챔피언조에 함께 배정돼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 성유진과 고지원(이상 18언더파 270타)을 한 타 차로 제쳤다.
배소현이 KLPGA 투어에서 우승한 건 지난해 9월 KG 레이디스 오픈 이후 11개월 만이다. 1993년생인 그는 올 시즌 첫 승 겸 통산 4승째를 거두면서 ‘올 시즌 첫 30대 우승자’라는 타이틀도 함께 가져왔다. 20대 초중반 젊은 선수들이 투어 우승 경쟁을 주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베테랑의 저력’을 보여줬다. 배소현은 KLPGA 투어 데뷔 이후 8년 만이자 31세인 지난해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통산 첫 우승을 달성하며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대기만성형 골퍼다.
경기 후 배소현은 고대하던 올 시즌 마수걸이 우승을 달성한 소감을 전하며 지난달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을 언급했다. “디 오픈 현장에 갤러리로 갔다가 지난 주 수요일(7월30일)에 귀국했다”고 운을 뗀 그는 “훈련량이 많지 않아 일단 예선 통과를 목표로 정하고 경기에 참가했는데 우승까지 하게 돼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배소현은 최근 2주간의 KLPGA 투어 휴식기를 활용해 지난달 영국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에서 열린 디 오픈 현장을 다녀왔다. 당시 중앙일보와 진행한 현장 인터뷰에서 그는 “골프를 하다보면 내가 하는 영역이 있고 운이 결정해 주는 영역이 있다. 볼 바운스가 나빠 안 좋은 곳으로 간다든지, 그린이 울퉁불퉁해 퍼트한 볼이 똑바로 가지 않는 상황 같은 것들이다. 그 운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디 오픈 현장에서) 경기를 보다보니 운도 상당 부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 미세한 차이도 가능한 한 컨트롤해야 하며, 운이 나쁘더라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디 오픈에서 돌아온 직후 운명처럼 KLPGA 투어 승리를 추가한 배소현의 우승 소감도 당시 인터뷰와 맥이 닿아 있었다. “디 오픈을 참관하기 전엔 골프에 대해 ‘절반은 선수의 몫이고 절반은 운’이라 여겼다. 하지만 가서 보니 선수의 영역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운을 뗀 그는 “결과를 결정하는 건 결국 과정이다. 결과를 신경 쓰기보다는 루틴을 포함해 내가 할 수 있는 과정부터 충실히 지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즌 중에 골프채를 일주일 이상 놓아본 게 처음이다. 그럼에도 시야를 넓히고 온 경험이 좋아서 은근히 (좋은 성적이) 기대가 됐다”고 털어놓은 그는 “세계적인 선수들 중 스윙 할 때 중심축이 흔들리는 경우는 아예 없었다. 그들의 동작을 유심히 살핀 뒤 백 스윙을 교정했다”고 밝혔다.

디 오픈 대회장 바로 앞에 숙소를 구해 놓고 하루 종일 출전 선수들의 연습과 경기를 지켜봤다는 그는 “고향(북아일랜드)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설 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놓은 로리 매킬로이의 인터뷰를 보며 대선수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에조금쯤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이어 “어떤 환경에서건 기본에 충실하려 애쓴다는 스코티 셰플러의 발언을 접하고선 내가 지켜야 할 기본은 어떤 것인지 차분히 되짚었다. 내가 골프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대기만성을 실천한 배소현은 기대한 만큼의 성적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급히 은퇴를 결정하는 일부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그는 “재능이 뛰어난 데 일찍 은퇴하는 선수들을 보면 아쉽다”면서 “디 오픈 참관을 마친 뒤 하루 정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우리는 골프선수지만 골프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면 안 된다.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챙기면 더 즐겁게 경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