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경관 보존, 규제만이 능사 아니다

2025-11-27

1979년 부동산 개발업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 맨해튼 5번가에서 ‘트럼프 타워’ 건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티파니사 건물의 미사용 용적률인 공중권(Air Rights)을 500만 달러에 매입했다. 건물을 용적률 한도만큼 짓지 않고 남겨둔 권리를 사들여 바로 옆에 짓는 자신의 건물에 적용했다. 미 언론들은 “이 거래로 트럼프 타워의 층수가 20층가량 높아졌고 수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고 평가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제도가 개발권 양도제(TDR)다. 올해도 맨해튼 5번가에 있는 세인트 토머스 교회가 한 개발업체에 1만1427㎡의 공중권을 3600만 달러(약 525억원)에 매각했다. 교회 측은 매각 대금을 건물 유지·보수에 쓴다고 한다.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민간 자본으로 충당한 것이다.

고층 개발에 정부-서울시 충돌

언제까지 주민 피해 외면하나

용적률 이양제 등 보상책 필요

서울에서도 세계유산 종묘의 경관 보존과 세운상가 일대의 재정비라는 딜레마를 해결할 대안으로 TDR을 제시하는 의견이 있다. 서울시도 지난 2월 ‘서울형 용적이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기본적으로 용적률을 매매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게다가 TDR은 개발권이 ‘이전되는 구역’과 ‘받는 구역’이 명확히 설정돼야 하고 매입 수요가 존재해야 거래가 성사된다. 종로구에서 인정된 미사용 용적률을 종로구에서만 매매할 수 있는지, 한강 너머 강남구 부지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를 정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에선 지방자치단체가 주요 개발사업에 개입하면서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준다. 이 구조에선 TDR이 도입되어도 개발업자는 지자체와 협상해 인센티브를 받으려 하지, 미사용 용적률을 매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논란을 통해 드러난 것은 종묘 주변의 경관 보존을 위해 누군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건물이 철거돼 임대료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새 건물을 짓지도 못하는 세운4구역의 토지 소유주다.

이제는 세계유산 등 문화재 보호 정책의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세운4구역은 종묘로부터 100m 이내로 설정된 역사문화환경 보존구역 바깥이다. 기존 서울시 조례는 보존구역은 물론이고 바깥 지역도 국가유산청장과 협의를 거쳐 건축 행위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도록 했다. 하지만 2023년 서울시의회가 이 조항이 과도한 규제라며 폐지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서울시의회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가 용적률을 높인 세운4구역 개발 계획을 밝히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겠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 특별법에 따라 종묘 지구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했다. 고시 등의 절차가 끝나면 서울시 등에 건축 행위가 세계유산에 영향을 주는지를 평가하는 세계유산평가(HIA)를 받으라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HIA는 사업자가 신청하는 것이라 서울시가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HIA가 실시되면 세운4구역 개발은 더 늦어질 것이다. 금융비용은 늘어나고 사업성은 저하된다. 지금 서울시가 해당 구역의 용적률을 600%에서 1000%로 높여준 것을 특혜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는데, 2~3년 뒤에 시작하면 사업성이 유지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종묘 주변의 경관 보존이 최우선 과제라면 지금이라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논란을 끝내는 것이 가장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일 수도 있다.

종묘의 주변 경관을 제대로 보호하겠다면 처음부터 명백한 정책 목표와 범위 설정이 있어야 했다. 필요 구간을 제대로 지정하고 HIA를 받을 대상도 명백해야 한다. 아울러 재산권 행사가 제약되는 주민들에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문화유산 보존은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 비용을 특정인에게 전가하고, “보존하라”는 당위론만 외쳐서는 곤란하다. 지금부터라도 합리적인 비용 분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TDR이 국내 현실에 적용 가능하다면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근거 조항을 법에 반영해야 한다. 세운상가 주변엔 세운4구역만 있는 게 아니다. 슬럼가가 된 지역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공익이다. 이를 위한 근본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외국은 지자체가 문화유산 보존용 채권을 발행하고 세금도 부과한다. 시민들이 나서서 돈을 모아 지키기도 하고, TDR을 통해 민간 자본을 조달하기도 한다. 규제로 누른 것 빼면 우리는 뭘 하고 있었나. 이제는 보존과 개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