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블록체인과 양자컴퓨팅의 교차점

2025-04-15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신뢰 기술로, 거래나 기록을 누구도 임의로 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신뢰의 핵심은 암호 기술이다. 개인 키를 통한 전자 서명, 블록 간 연결을 위한 해시 함수(SHA-256 등), 그리고 거래 무결성 검증 과정 모두가 암호화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 예컨대 비트코인의 경우, 2025년 4월 현재까지 90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이 암호 보안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고전 컴퓨터 환경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며,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기존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근본적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큐비트(Qubit)의 중첩과 얽힘 원리를 활용해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기존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연산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RSA-2048 키를 고전 컴퓨터로 해독하려면 수십억년이 걸리지만, 양자컴퓨터는 슈어(Shor) 알고리즘을 통해 이 과정을 몇 시간 혹은 그 이하로 단축시킬 수 있다. 이는 현재 블록체인이 사용하는 전자서명 알고리즘(ECDSA 등)이 해독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론적으로는 과거의 모든 블록체인 거래도 위·변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양자컴퓨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암호 체계의 전환이다. 미국 NIST는 2024년 8월, 양자컴퓨터에도 안전한 암호 알고리즘으로 Kyber(ML-KEM)와 Dilithium(ML-DSA)을 공식 채택했다. 국내외 블록체인 프로젝트들도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Quantum Resistant Ledger(QRL)'는 해시 기반 전자서명인 XMSS를 도입해 양자 안전성을 확보했으며, 이더리움은 장기적으로 양자 내성 프로토콜로의 전환을 계획 중이다. 또, 양자 난수 생성기(QRNG)나 양자키 분배(QKD)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암호통신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블록체인 보안이 아닌 '양자보안 블록체인'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양자컴퓨터는 블록체인에 위협만 주는 기술은 아니다. 특히 양자게이트를 이용한 병렬 연산 능력은 블록체인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인 거래 처리 성능 한계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현재 비트코인은 초당 약 7건, 이더리움은 약 30건의 거래 처리(TPS)에 그치며, 이로 인해 글로벌 결제 시스템으로의 확장은 쉽지 않다. 반면, 양자 연산을 스마트 계약 실행, 블록 생성 속도 향상, 대량 데이터 처리 등에 적용할 경우, 블록체인의 TPS는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즉, 양자컴퓨팅은 블록체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미래형 연산 엔진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금융·물류·의료 등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

양자컴퓨팅의 발전으로 기존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양자내성 암호(PQC) 표준을 도입하고, 에너지·의료·행정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최초의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본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 (KISA)이 주관하며, 양자 보안 기술을 국가 핵심 인프라에 적용해 향후 보안 위협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시범사업자는 에너지 분야에 한전KDN, 의료 분야에 라온시큐어, 행정 분야에 LGU+ 연합체가 각각 선정되어 양자내성암호를 실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다수 민간 기업들도 전력망, 통신망, 의료 정보 시스템 등에 양자 보안 기술을 적극 도입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정부 역시 안전한 디지털 전환을 위한 민관 협력 기반의 정책적 지원을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기존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양자내성 알고리즘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키 기반 구조, 호환성 유지, 노드 간의 동기화 등 복잡한 기술 과제가 병존한다. 특히 기존의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전체 노드의 합의가 필요하므로, 실제 적용에는 장기적인 로드맵과 글로벌 커뮤니티의 협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양자컴퓨팅은 블록체인 기술의 파괴자이자 진화 촉진자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술 감시체계와 함께 민간과 공동의 테스트베드를 확대하고, 국제 양자암호 표준 도입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 기업 역시 양자내성 알고리즘 기반의 보안 재설계를 서두르고,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할 시점이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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