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안전망 확보를 위하여

2025-03-26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발표하였다. 지난해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 사직, 의대생 집단휴학, 대학병원 입원거절 등 의·정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1·2차 의료기관 활성화,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흉부외과·신경외과 등의 필수의료 지원 등 의료전달체계를 구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진료수가를 올려 주고, 의료사고 발생 시 반의사 불벌죄를 확대하며 경과실인 경우에는 기소하지 못하게 하는 의료인 형사책임 특례제도의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환자의 재산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불평등 제도이다.

의료계 달래기 형사특례 제도

환자의 고발 막는 불평등 제도

과실 반복돼 신뢰 깨질 가능성

환자와 의사 지위 동등해져야

헌법재판소는 “의료행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본인 사람의 신체와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대법원은 “의사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보아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 의무가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생명 배려 의무가 있는 의료인에게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법은 사회적 약자가 상대적 강자와 대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류의 오래된 발명품이다. 법은 윤리와 도덕으로 지켜지지 않는 인간의 행동에 가해지는 최소한의 강제력이다. 모든 국민은 헌법상 평등권과 재산권,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정부는 강자를 더 보호하는 의료개혁 실행방안을 통해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였다. 의료인 형사 특례제도가 없는 현재도 의료형사사건은 대부분 무혐의 종결되고 기소돼도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는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일부 유죄선고된 사건들은 의료계에서조차도 명시적으로 잘못하였다는 감정이 회신된 사건에 국한되고, 형량도 일반 과실치사상 사건에 비해 낮다. 지방 이식 수술 시 호흡부전 부작용이 있는 프로포폴 마취제를 과다주입하고 활력 징후를 측정하지 않아 저산소증으로 사망케 한 사건도 벌금형 선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사제재의 목적은 재범을 막고 피해자의 보복심리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 의료과실에 대해 잘못한 만큼의 제재가 없으면 의료인은 같은 과실을 반복할 수 있고, 피해환자는 사적 제재를 꾀하여 상호신뢰 확보가 더 어렵게 된다. 향후 의료인 형사특례 제도가 시행되면 형사고발 위험이 사라져 인명을 경시하고 의료 상업화로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어진다. 의료사고는 모두 경과실이기 때문에 중과실에 한해 기소하도록 한다면 형사재판을 받을 의료과실사건은 없다.

국회는 최근 응급환자가 진료거부로 치료 못 받은 채 재이송되는 사례가 연간 5000건이 넘고, 또다시 거부되어 제3, 제4 의료기관으로 전원되는 사례도 여러 건 발생하는 것이 일상화되자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의·정갈등 발생 후 2024년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간 응급실 뺑뺑이 관련 심부전·뇌질환·외상 등 응급질환으로 인한 초과사망자 수가 554명에 이른다고 발표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의료수가를 높이고 응급의료를 방해하는 환자 측의 폭력 행위를 엄벌하는 등을 주요 내용으로 의료계 달래기에 나섰다.

과거 택시 운전사들의 승차 거부가 문제 되자 낮은 택시비 때문이라는 논리로 택시비를 인상하였으나 승차 거부사태는 해결되지 않은 적이 있다. 택시 증차정책으로 택시를 늘리자 해결되었다.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일시적 위기를 넘기려고 만든 위헌적 불평등 정책은 사회적 갈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전세 계약이 6~12개월 단기로 체결되고 갱신 때마다 임차료가 배로 뛰게 되자 주택임차인 가족이 집단으로 자살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빚을 내 인테리어를 한 후 상점을 열었는데 1년 만에 계약갱신을 거절당해 길거리로 내쫓기는 상가임차인 피해가 빈번하자 임차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여 5년 이상 장기임차권과 연간 임대료 5% 이내 상한제를 도입하였다. 이제는 임대인이 약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지위가 균형을 잡고 있다. 형사고발이 두려워 미용성형 수술이나 검사를 기피하는 의료인은 없다. 환자의 형사고발권을 제한하더라도 환자안전망·응급환자진료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필수의료수가와 응급의료수가를 인상한다고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미용성형 수술로 쏠리던 의사들이 돌아올지 의문이다. 환자 입장에서 의료인과 대등하게 진료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만들고, 지불할 만큼 진료비를 지불하고, 책임질 만큼 책임을 묻게 하는 것이 환자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다. 환자와 의료인 간 신뢰, 환자의 의료인에 대한 존경은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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