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잘하는 것으로 텃세를 극복한다

2025-01-3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금부터 약 3년 전, 한 일간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올라왔다.

2022년 3월 5일에 강원 강릉시 옥계면과 동해시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산불은 한 남성이 “이웃들이 무시한다”며 저지른 방화에서 비롯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오전 1시 7분쯤 토치 등으로 강릉 옥계면 남양리 자택과 농막에 불을 질러 산불을 초래한 혐의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경찰 수사에서 "주민들이 수년 동안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났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A씨는 5년 전 서울에서 강릉으로 내려왔고 주민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귀농이나 귀촌을 실행한 사람들이 겪는 첫 번째 난관은 원주민들의 텃세다. 사전에서는 텃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통상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특권 의식이나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을 두고 텃세를 부린다고 한다. 생태계에서도 기 영역을 지키기 위한 텃세 행동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까치, 잔가시고기, 얼룩말 등 많은 동물이 텃세 행동을 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들도 텃세가 있다. 숲은 나무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와 마찬가지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다른 나무가 들어오지 못하게 텃세를 부린다. 빨리 키를 키우고 가지를 넓게 펼쳐 그 밑에 다른 나무가 들어오지 못하게 방해한다. 대부분의 바늘잎나무는 혼자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떼거리를 만들어 자란다. 예를 들어 소나무 숲을 보면 온통 소나무만 있고 다른 나무들은 거의 만날 수가 없다. 이러한 텃세는 불필요한 경쟁을 줄여 생태계가 유지되는 한 방식이다.

텃세는 인간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식물이나 동물의 세계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텃세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나쁘다기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한 마을도 하나의 생태계라고 본다면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방편이 텃세라는 행동이다. 새로 이사 온 도시 사람이 이러한 텃세를 극복하지 못하면 마을을 떠나는 수밖에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

귀촌하는 사람이 저지르기 쉬운 첫 번째 잘못은 집을 크게 짓는 것이다. 우리 마을의 원주민들은 예전 새마을운동의 하나로 지붕개량사업을 하면서 지은 똑같은 모양의 집에 살고 있다. 옆집 노인회장님에게 물어보니 1979년에 정부에서 대출자금을 지원하여 마을 집들을 하나의 설계도에 따라서 모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시골 마을에 어느 날 도시 사람이 내려와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는데, 커다란 이층집에 지하실까지 만들었다면 주민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새로 지은 집에는 노래방 시설은 물론 황토 찜질방까지 갖추고 있다면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자기들과 수준이 다르다는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생활 수준의 차이를 실감 나게 느낄 것이다. 집을 크게 짓는 사람은 주민들과 어울려 함께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갈등을 예상하고서, 나는 대지 110평에 바닥면적 21평의 작은 집을 지었다. 어울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집을 크게 지으면 겨울에 난방비를 감당하기 힘들고 유지관리비도 많이 든다.

귀촌하는 사람이 저지르기 쉬운 두 번째 잘못은 마을 사람들을 무시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주민이 여럿 있다. 원주민 가운데서 대학 졸업자는 두 명뿐이다. 문맹은 아니지만 주민 대부분이 슬기말틀(스마트폰의) 편리한 기능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단순히 전화기로만 사용한다. 요즘에는 학교 버스가 초등학생들을 실어 나르지만, 예전에는 차가 없어서 어린이들은 십리 이십 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원주민들도 대부분 초등학교는 졸업했다. 그러나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더 멀리에 있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 마을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고학력이라고 인정된다. 그러므로 대졸 학력의 귀촌인은 원주민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길 수가 있다. 은연중에 무시하는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원주민들과는 대화가 잘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왕래를 하지 않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주민들과 거리가 멀어진다. 매우 조심해야 할 주의 사항이다.

2015년 8월에 귀촌하면서 우리도 텃세를 겪었다. 하수도관을 집에서부터 작은 도랑까지 땅을 파고 묻어야 하는데, 직진하려면 옆집 밭을 통과하여야 한다. 밭을 파려면 땅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 그래서 옆집 노인에게 허락을 구하니 안 된다고 말한다. 밭을 파서 하수도관을 묻고 다시 메우면 되는데, 농사에 지장이 있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한다. 공사하는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밭을 우회하여 도랑 아래쪽으로 연결하는 수밖에 달리 해결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때의 난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사하는 날, 낮에 마을 이장이 오더니 새로 이사 왔으니 마을 사람에게 한턱 내란다. 다른 마을에서는 후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그냥 주민들에게 식사나 한 번 사라고 인심 쓰듯이 말한다. 성질 급한 각시는 “좋은 생각이다. 오늘 저녁에 모두 우리 집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시라.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라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그러고는 부랴부랴 하나로 마트에 가서 고기 사고, 술 사고, 반찬거리 사고, 불과 몇 시간 만에 20 여명의 식사를 준비하였다. 그날 밤늦게까지 우리 집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오랜만에 떠들고 먹고 마시는 잔치가 벌어졌다. 우리 각시는 술이 세다. 내 주량은 소주 3잔인데, 각시는 소주를 3병까지 마신다. 이사하는 날 각시가 술 상무 노릇을 톡톡히 잘 해냈다. 술을 함께 마시면 아무래도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각시는 동네 사람들과 금방 친해졌다.

텃세를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종요로운 것은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나는 동네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귀촌한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러 가지 형태로 텃세가 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 10년 넘게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

요즘에는 시골에도 먹거리가 풍부해서 음식이 남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식구가 둘이기 때문에 잘못 아끼다가는 음식이 상해서 버리게 된다. 각시는 남는 음식은 곧바로 옆집에 가져다준다. 각시가 텃세를 극복하는 방법은 음식 나누기이다. 사람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아직 우리는 텃세를 느끼지 못하고 잘 지내고 있다.

인간의 감정은 일방통행이 아니고 쌍방 교류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이렇게 단언한다.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고, 내가 미워하면 상대방도 나를 미워한다.” 나의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이쁨도 제게서 나고 미움도 제게서 난다.“ 이 속담을 따라 실천한다면 아무리 험악한 시골 마을에 살더라도 텃세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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