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장수(長壽)는 지옥... 웰다잉기본법 빨리 제정해야" [웰다잉기획④]

2024-09-27

<편집자 註> 고령화 등으로 지난해 사망자 수가 역대 최고치를 찍은 한국은 죽음이 흔한 사회다. 고령사회의 화두인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 고조는 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을 기피하는 정서 또한 강하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에 비해 존엄한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준비가 소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나 삶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꿈꾸지만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지금, NGO저널은 대한웰다잉협회와 공동기획으로 진정한 웰다잉의 의미와 현실의 문제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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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대한웰다잉협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대한웰다잉협회는 2011년 공식 설립됐습니다만, 이전부터 활동은 했었습니다. 2005년도에 웰다잉연구소로 활동하다 2011년이 되면서 웰다잉협회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양극적인 사고로 인식할 게 아니라 연속선상에서 이해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고 개인과 사회가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웰다잉협회라고 하니까 어떤 분들은 ‘웰다잉이니 잘 죽도록 돕는 단체 아니냐’고 오해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죽으러) 스위스로 가려는데 협회가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웰다잉이란 잘 살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죽음이라는 배경에 삶을 비춰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역설적으로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잘 살아보세’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을 느끼고 스스로 생명을 마감하는 자살이 해마다 느는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입니다. 결국 잘 죽는 죽음을 생각할 때에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해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돌이켜 후회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나는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하는 분들이 결국 편안하게 세상을 뜬다는 것, 그래서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돌아가시도록 하려면 잘 살도록 도와드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웰다잉과 웰리빙은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웰다잉에 관해 오랫동안 활동을 해오면서 회장님만의 모범 답안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웰다잉이란 삶에 후회가 없고 또 가족,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이 해결되고, 사후생에 대한 어떤 소망을 품게 되는 것, 그것이 웰다잉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전제로 내 죽음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야겠지요. 죽음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행위로서 저는 관계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구, 이웃 간 갈등 속에서 서로 원망하며 살지만 세상을 떠날 때 이 관계를 풀지 못하면 가는 사람도 제대로 눈을 못 감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참 힘들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 이 세상을 뜰지 모르니 죽음이 임박하면 해결하겠다가 아니라 계속해서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삶 자체가 풍성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죽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마지막 숨을 어디에서 거두고 싶으냐고 물으면 자신이 누운 자리 가족 형제자매가 모인 곳에서 외롭지 않게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 평온함 속에서 세상을 편히 뜨기 위해 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놓아 내가 의식이 없을 때 자녀들이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의사들도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준비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 장례도 사전에 준비해두는 것이 필요하고요. 과거에는 집성촌에서 살거나 형제자매들이 많은 집에서 살아 대가족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 가능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새는 무연고 사망이 굉장히 많습니다.

- 무연고 사망은 왜 많습니까.

대가족이 살던 예전과 달리 부모,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1인 가구가 굉장히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홀로 외롭고 우울하게 단절된 채 살아가는 1인 가구가 많다보니 고독사가 늘었습니다. 그렇게 홀로 죽고 난 뒤 일주일 또는 한 달 뒤에나 냄새가 나 시신이 발견돼도 많은 경우 순탄하게 장례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장례를 치르려면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아무나 뗄 수 없기 때문이에요. 배우자, 자녀, 부모 등 순으로 사망진단서를 뗄 수 있는 순위가 있습니다.

직계 가족이 없을 경우 형제자매가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문제는 누군가 고독사를 해서 장례를 치르려고 호적 상 가족에게 연락을 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인연을 끊고 고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가족이 거부할 경우 시군에서 공영장례를 치러줍니다. 어찌됐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례는 스스로 준비하자는 겁니다. 내가 죽으면 자식이 알아서 하겠지, 또는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도 이런 준비들은 하지 않고 있는데, 부고는 어느 선까지 보내고 수의는 어떻게 준비할지 등 자기 장례에 대해 많은 준비를 사전에 해놔야 한다는 것이지요.

장례절차 뿐 아니라 장례를 치를 경비까지도 미리 마련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두면 자식들이 왜 부담을 느끼겠습니까. 또 유산도 잘 정리해야 합니다. 이게 안 될 경우 자녀들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더 할 수 있다면 자서전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서전을 유명한 사람, 정치하는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언제 태어나 어떻게 살았다는 것을 인생 노트처럼 써놓으면 족보보다 더 훌륭한 유산으로 남을 수 있지요. 이 다섯 가지 정도를 깊이 고민해주면 좋겠습니다.

- 말씀하신대로 부모님 생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쓰고 유언장도 작성해놓고 미리 준비하자고 자녀들이 권유했을 때 썩 내켜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녀들 입장에서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생각은 젊은 사람들이 미리 하는 걱정인 것 같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통과되고 2018년부터 시행됐는데 그 당시 복지부는 어르신들에게 연명의료의향서를 쓰라고 하면 ‘치료도 받지 말고 그냥 죽으란 말이냐’고 오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우리 강사들이 막상 현장에서 어르신들에게 콧줄 달지 않고 편안히 가실 수 있다고 제도를 설명해드리니 반색하더라는 겁니다.

자기들이 원하던 것이라고요. 누구 할머니처럼 자리보존하며 1년~2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채로 살고 싶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식들이 자기를 중환자실에 보내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만 했는데 법이 생겼으니 서로들 쓰겠다고 좋아하더라는 거지요. 정부에서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본 겁니다.

제가 교육을 다니면 어르신들이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만큼 노인들이 자기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많은 거지요. 젊은 사람들 입장에선 죽음에 관해 말하는 것이 두려우니까 부모님이 불쾌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잘 몰랐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어 알게 되었다며 굉장히 좋아합니다. 웰다잉 교육을 하다보면 오히려 자녀들이 가끔 오해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 어머니는 가만히 있는데 왜 꾀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같은 걸 쓰게 하느냐고 의심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르신들은 자기들은 듣고 배워 아는데 젊은 사람들은 모르니 교육 좀 해주라고 말합니다.

- 한국은 2010년 전후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한국 사회가 웰다잉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옛날엔 장수가 축복이었습니다만, 이제는 흔히 장수는 지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준비 안 된 장수는 그 자체로 외롭고 지겹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 된 겁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를 맞은 일본은 노후에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든 심각한 다사(多死) 사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어떻게 죽을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요. 제 세대만 해도 부모들이 90대까지 사십니다. 부모를 보면서 어떻게 늙어가고 죽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 웰다잉은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공동체 사회와 국가적 차원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웰다잉 문화 정착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어르신들이 가난하게 살며 고생한 탓에 웰다잉을 복지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복지 차원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연명의료결정법을 이야기해보면, 이 법은 이전 웰다잉법으로 먼저 발의됐었는데 웰다잉의 범위가 상당히 넓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법통과도 어려워졌고 범위를 명확하게 축소해 연명의료결정법으로 통과시킨 것이지요.

웰다잉 전체에서 10분의 1 정도만 반영된, 웰다잉의 한 꼭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에서 이 연명의료를 다루고 있는데 문제는 연명의료만이 아니라 이와 관련해서 장기기증, 재산상속, 장례 등 다른 여러 문제들도 모두 얽혀있다는 겁니다. 따로 논의할 주제들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현재의 법은 웰다잉을 전체적으로 일관성있게 체계화해 지원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요.

가령 저희가 청소년을 상대로 웰다잉 교육을 하고 싶어도 청소년교육과로 가야할지 유아교육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노인복지과로 가야할지 모호합니다. 어떤 것은 복지부 어떤 것은 교육부 또 어떤 것은 문화관광부 관할에 있어 정리가 안 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 담당 공무원들은 서로 다른 과로 미루기 바쁩니다.

이럴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웰다잉 기본법을 통과시키고 정부가 웰다잉을 관리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해서 이를테면 ‘웰다잉 지원과’를 만들어 법제화한다면 웰다잉 문화 정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이라는 큰 플랭카드를 배경으로 삶을 비춰보면 자연스럽게 국민의 편안한 임종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어떤 운영이 좋은지 등 전체적인 정책 방향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봅니다.

- 웰다잉을 위해 여러 준비를 잘 마치신 것으로 압니다만, 개인적으로 버킷리스트가 있으실 텐데, 어떤 것들을 실천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해마다 해야 할 버킷리스트가 있는데 실천하고 있고요, 자서전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도 썼습니다. 또 작년에는 갈등을 겪은 분과 화해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먼저 사과했습니다. 당장 2024년에 내가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화해를 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또 다른 것은 몇 년 뒤 협회의 일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다가올 텐데 좋은 후임을 찾는 것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오늘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살더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갔네’라는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매일 매일 사는 것이 저의 버킷리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안락사를 원하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한다고 보십니까?

그만큼 많은 사람이 노후 자기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우선 안락사를 존엄사와 혼용해 쓰는데 저는 그 단어를 함부로 써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락사는 절대 존엄사가 아닙니다. 의사조력자살입니다. 자기결정자살이든 의사조력자살이든 결국은 다 자살인 것이지요. 자살이라고 하면 혐오감을 가질까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라고 명칭하는데, 그건 언어도단입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줘서 죽거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목을 매어 죽는 것 모두 다 자기결정자살인 겁니다. 내가 뛰어내려 죽는 자살은 안 되고 의사 도움받아 하는 건 괜찮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안락사 여론이 높은 건 자기 삶이 무의미하고 비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초라하게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쉽게 죽도록 해주는 것이 방법은 아닌 거지요.

우리나라 자살률이 지금도 너무 높은데, 제도마저 그 방향으로 가 사람이 쓸모를 따져 가치가 없으면 죽도록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면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질 위험이 큽니다. 제도의 허점을 노린 간병 타살도 많아질 겁니다. 설령 자신이 택했어도 마지막 콧줄을 뗄 때 눈물을 흘리고 약물을 주입할 마지막 순간에 살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안락사 여론이 높은 것을 표피에 매몰돼 해석해서는 안 되고 그만큼 존엄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크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장은 대구 계명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Souhtern Christian University 교육학 석사(M.A), 상담심리학 박사(Ph. D of Psychology)이며 한국호스피스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정년퇴임했다. 현재 평택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웰다잉전공 특임교수로 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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