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욕 퍼붓는 자, 무릎 꿇렸다…부처가 한방에 제압한 방법

2024-09-28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 명제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붓다는 이 물음을 안고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고행과 좌절, 그리고 궁리와 궁리와 궁리 끝에 그는 깨달음을 성취했습니다.

그런 깨달음의 눈으로 붓다는 우리에게 삶의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절망을 넘어서고, 분노와 좌절을 잠들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솔루션입니다.

‘백성호의 붓다뎐’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06) 은 붓다가 건네는 그러한 삶의 등대들을 담습니다.

#풍경1

“삶은 고통의 바다다.”

2500년 전

인도의 수행자들이

가졌던

생각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ㆍ로ㆍ병ㆍ사를 거쳐야

하니까요.

출가하기 전,

붓다 역시

이런 안목으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떡하면

생로병사라는

정해진 삶의 궤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떡하면

이 고통의 바다를

뚫고 갈 수 있을까.

붓다의 출가는

사실

이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인도의 수행자들은

인간의 몸을

욕망의 뿌리라고

보았습니다.

그 뿌리를

잘 눌러야만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보았지요.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수행의 방식은

고행(苦行)이었습니다.

#풍경2

붓다 당시

인도 북부의

네란자라 강변에는

수행림이 있었습니다.

무려

1만2000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이

그 숲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을 했습니다.

가시방석 위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벌겋게 불이 살아 있는

숯불 위를 걷는 사람도 있고,

한쪽 다리로만

서서 생활하는 사람,

한쪽 팔을 든 채

평생 살아가는 사람 등

고행의 양상은

무척 다양했습니다.

붓다 역시

처음에는

고행을 했습니다.

음식의 양을

점점 줄였습니다.

나중에는

하루에 쌀 한 톨,

겨자씨 한 알만

먹을 정도로

극한의 고행을 했습니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에는

붓다의 그럼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른바 ‘고행상’입니다.

앙상한 피부 밖으로

갈비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살은 꺼지고

핏줄이 살보다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두 눈은 움푹 들어가

해골 같고,

뱃가죽도 쑥

꺼져 있습니다.

당시

붓다의 등을 만지면

뱃가죽이 만져졌고,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만져졌다고

합니다.

그런

고행의 극한에서

붓다는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아닙니다.

거기에는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풍경3

붓다의 고행은

무려

6년간 계속됐습니다.

수행림 안에서

붓다의 고행을

따라올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그런 붓다를

존경했습니다.

어느날

붓다는 문득

깨닫습니다.

아,

고행의 길은

끝이 없을 뿐이구나.

이 길의 끝에는

깨달음이 없구나.

어린 시절,

잠부나무 아래서

평안하고

고용하게

명상에 잠겼던 때를

떠올리며

붓다는 알게 됩니다.

수행의 핵심은

고통을 참고

욕망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더 깊이 내려가는 것임을

말입니다.

붓다는

단호하게 고행을

중단합니다.

당시

그를 따르던

동료와

수행림의 수행자들은

하나같이

붓다를 비난했습니다.

고행을 접고서

강물에 몸을 씻고

공양 받은

우유죽을 먹는다며

“배신자”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에는

몸을 씻는 것조차

수행자에게는

타락이라고

보았으니까요.

그 모든

손가락질과 비난을

예상하면서도

붓다는

고행을 멈추었을까요.

그건 그가

‘출가의 이유’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로병사 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겠다는

출가의 이유를

가슴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풍경4

강물에 몸을 씻고

우유죽을 먹은 뒤

기운을 차린

붓다는

평온한 마음으로

보리수 아래에

앉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고요에 잠겼습니다.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이니까,

자연스러울 때가

이 우주와 하나가 될

가능성이 더 많겠지요.

그렇게

깊은 내면으로

내려간 붓다는

결국

깨달음을 얻습니다.

깨닫기 전에

그에게는

번뇌와 해탈은

공존할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번뇌가 있으면

해탈이 없고,

해탈이 있으면

번뇌가 없는

양자 택일의 문제였습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봤을 때는

달랐습니다.

번뇌의 속성과

해탈의 속성이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번뇌는 본래

비어있는 것이고,

해탈 역시

비어있음을 깨칠 때

드러나는 것이니까요.

이제 붓다는

번뇌 속에 있으면서도

해탈의 바다를

거닐게 됩니다.

그걸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말합니다.

지지고 볶는

삶의 번뇌가

깨달음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둘의 속성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뚫기 전에는

둘이지만,

뚫은 뒤에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풍경5

2500년 전의 인도는

고대 브라만교

사회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불교는

신흥종교였습니다.

브라만교를 믿는 이들은

수시로

붓다를 찾아와

욕을 하기도 하고,

모욕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발랑기가라는

브라만 젊은이가 찾아와

붓다에게

쌍욕을 퍼부었습니다.

붓다는

그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했는데

그 손님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야 당연히

주인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네가 쏟아낸 욕설과 비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욕을 받지 않겠다.

그러니 그것이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이 말을 듣고서

발랑기가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낯선 젊은이가

찾아와

쌍욕을 퍼붓는 일은

번뇌이지요.

붓다는

그 번뇌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피워냅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번뇌 속에

이미

깨달음의 지혜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겪게 될

삶의 온갖 번뇌 속에

그걸 헤쳐갈

솔루션이

이미 들어있다.

생각할수록

힘이 나지 않나요?

우리가 마주칠

지독한 절망 속에

이미

희망의 솔루션이

심어져 있는 셈이니까요.

그러한

희망의 씨앗들이

아래의 글들에

하나씩 둘씩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붓다가 깨달은 고행의 진실

궁녀 욕망의 민낯 봐버렸다, 붓다 출가시킨 충격의 새벽

죽 먹고 몸 씻으며 ‘타락’했다…싯다르타가 깬 ‘고행의 허상’

아들 낳자마자 출가한 붓다와, 모친에 돌 던진 성철의 절박함

‘싯다르타 유혹해라’ 악마는 요염한 세 딸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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