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교수의 치과의사 2막 1장] 아날로그적 감성, “그 땐 그랬습니다.”

2025-03-13

과천시 보건소 업무대행 치과의사 김영수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치과의사가 아닌 선배(의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소구치 부위가 불편하다고 하신다. 필자의 처지를 아시는지(?) 집 가까운 치과를 소개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신다. 일단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라서 그런지, ‘개인정보보호법’ 탓인지 치협에서 ‘치과의사 명부’도 발간되지 않는다. 필자와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특별히 소개해 줄 치과 찾기도 쉽지는 않다.

휴대폰에 있는 연락처와 과거의 주소록 등을 동원하여 소개해 줄 치과 두 곳을 ‘x톡’에 올려 보내드렸다. 선배님 집 가까운 ‘K’치과가 마음에 드셨는지 그리 가시겠다고 하여, 다음날 오전에 다시 연락드릴테니 조금 기다리시라고 하고, 밤 늦게 ‘x톡’과 문자로 ‘K치과 원장’에게 부탁을 해 드렸다.

다음날 오전까지 이루어진 진료 부탁과 확인 절차 끝에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환자였던 선배님으로부터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K치과 원장’을 ‘주치의’로 하시겠다는 회신도 함께 말이다. 다시 후배인 ‘K치과 원장’이 연락을 해 왔다. ‘앞으로도 계속 진료 잘 해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시라’ 는 전화를 받았다.

보건소 업무대행 치과의사 역할을 하면서, 가끔 만나게 되는 ‘당황스러운 일’ 중의 하나가 임플란트 수술 환자가 ‘Stitch Out’을 하러 필자를 찾아오는 경우이다.

‘사랑니(지치) 발치 후 Stitch Out’과 같은 경우라도, 필자의 기억에는 ‘의뢰서’ 등을 작성하거나 전화를 걸어 환자가 지리적, 시간적 어려움으로 인해 귀 원장님께 진료를 의뢰한다는 등의 내용을 전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환자는 아무 정보도 없이 집 가까운 보건소에 가면 거의 ‘공짜로’ stitch out해 줄 것이라고 듣고 필자를 찾아온다.

‘민원’이 무서운 건지 ‘민원인’이 무서운 건지, 보건소에서는 무조건 접수를 해 주고 환자를 유니트 체어에 앉히고 필자를 기다린다. 어느 치과에서 보냈느냐고 물어보면, 강남의 유명한 임플란트 전문 치과라고 한다. Stitch out을 해 주면서, 할 수 없이 눈에 보이는 걱정스러운 sign이라도 환자에게 고지하고 해당 치과에 꼭 들러 확인해 보라고 하는 것이 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환자의 상태를 간단히 적은 ‘의뢰서’ 발급하는데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전화 통화 한 번 하는데 ‘세월’이 필요한 것은 아닐 터인데” 같은 생각은, 우리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필자와 같은 치과의사의 몫일 것이다. 우리 세대의 치과의사들은 우리의 선배나 스승으로부터 그리 배웠기 때문에 이 상황에 당황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즘처럼 3월 초인데도 불구하고 애매하게 추운 날씨면, 군의학교에 입소하여 영천에서 훈련 받던 후보생 시절이 생각난다. 훈련받고 있을 군의관 후보생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해본다.

필자가 ‘군의학교’에서 기억나는 일은 내무반 배정을 받고 20여 명의 의사, 치과의사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독특한 개성, 의과의 각 과별 특성들을 파악하게 되는 순간과, 필자의 모교 대학동기들(수련 후 입대했던 동기들)과 그야말로 순수한 만남을 가진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당시 10개 치과대학 중 졸업생을 배출한 9개 치과대학 졸업생들이 군의학교에 입교하였는데, 당시 1회 졸업생으로 군의학교에 입교했던 지방 소재의 치과대학 출신 선생들도 만났던 기억과 함께, 지방 소재의 치과대학 출신 후보생들이 본인들의 출신 학교에서는 필수 전공과목 교수 정원도 채우기 힘들었던 기억을 소환하면서, 예방치과를 수련하고 입교한 필자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기억도 나고, ‘예방의학’과 ‘예방치과’를 유사(?)하게 평가했던 의과대학 출신 후보생들은 필자에게 여러 가지 배려와 깍듯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평소 필자보다 우수한 인재로 평가 받았던 필자의 모교 동기들은 수련기간 3년간 서로 다른 전공을 찾아갔지만 이제는 똑같은 군복으로 서로의 민낯을 보고 서로 다독여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재미 없는 필자의 이야기를 재미 있게 들어 주기도 하고, 묵묵히 필자의 실수까지도 감싸주었던 동기들 덕분에 2월 초의 입교부터 4월의 임관식까지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 흰 머리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져서야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린다.

군의학교와 영천 3사관학교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필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순간은 무엇보다도 모교 이외의 치과대학 졸업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영천 3사관학교에서는 내무반별로 모든 학교를 골고루 배분하다보니, 필자의 모교 동기들과는 헤어지게 되었고, 의과 출신들과 1-2명의 타 치과대학 출신 후보생들과 생활하게 되었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의 민낯을 보게 되었고, 훈련 과정에서는 한 해라도 더 나이든 탓에 필자 등이 뒤처지는 모습을 보여도 서로 도와가며 훈련기간을 보냈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분명했던 것은 학교 간의 ‘교과 과정’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졸업생들간의 인성’ 차이는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우리’에게는 이후의 ‘긴 배움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간 헤어짐만을 아쉬워했던 것 같다.

필자를 아끼는 후배 중에 모교 출신이 아닌 타교 출신도 있다는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나 보다. 요즈음은 필자의 모교가 ‘치전원’이 되어서인지 후배가 후배 같지가 않고, 필자보다 많이 공부한 똑똑한 후배일 듯하다. ‘아날로그’라는 말은 왠지 오래된 느낌이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고, 지금 배출되는 후배들은 ‘디지털’에 전문가일 듯하다.

하지만 ‘아날로그 감성’에 익숙한 치과의사들도 많은 수가 활동하고 있고, ‘아날로그 감성’에 익숙한 환자들도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와 같은 세대들의 아쉬운 외침이다.

오랜만에 컴퓨터 화면에서나마 손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본인이 원하는 필체를 택해, 동료 치과의사에게 ‘의뢰서’를 써 보낼 수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마저도 포용하는 치과의사 동료로서의 배려가 새삼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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