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희준 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은 툭하면 오보라고 말한다. 문지석 전 부천지청 부장검사가 엄 전 지청장이 ‘쿠팡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하자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오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경향신문이 <검찰, ‘쿠팡 사건’ 중요 압색영장 누락 후 불기소>라고 이 사건을 처음 보도했을 때도 그는 말했다. “오보이니 민형사상 소송으로 대응하겠다.”
문 검사의 폭로로 엄 전 지청장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 사건은 그동안 검찰이 어떻게 노동 사건을 뭉개왔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검찰은 정치적 사건에서는 순순하게 정권의 칼로 사용됐지만, 노동 사건은 번번이 불기소하면서 자본의 논리를 편들었다. 민생에 역행하는검찰을 바로잡는 개혁이 필요하지만, 이 사건은 그 명분으로만 그쳐선 안 된다.
핵심은 부천지청이 ‘왜 그렇게 압수수색 영장 증거를 누락하려고 했는지’다.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됐다. 노동부 부천지청 근로감독관이 압색영장을 신청하자 문 검사는 전결로 영장을 청구했고, 지난해 9월 영장이 발부됐다. 노동부 부천지청은 쿠팡CFS 본사를 압색해 일용직 노동자들의 근로기간을 초기화하는 규정을 도입한 자료를 획득했다. 쿠팡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동의 절차를 무력화하려 했던 사실을 알 수 있는 핵심 자료다. 쿠팡이 취업규칙을 변경한 후 전국 노동지청에 진정·신고가 접수됐지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것은 부천지청 건뿐이다. 부천 근로감독관만이 쿠팡에 불리한 압색 증거를 획득해서다.
증거가 획득되자 노동부·검찰 모두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일, 압색이 시작되기도 전에 김동희 전 부천지청 차장검사는 문 검사에게 압색 사실을 확인했다. 소수만 알아야 하는, 부장검사 전결이었던 압색을 김 전 차장검사는 어떻게 알았을까. 문 검사는 영장을 전결 처리했다는 이유 등으로 조직에서 소외당하기 시작한다. 노동부 본부에서도 부천 근로감독관의 영장 신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검찰도, 노동부도 왜 그렇게까지 압색에 유난이었을까.
쿠팡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을 갈아 넣어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지만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쓰고 버리는 일용직에 불과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이라니,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이었으므로 어떻게든 안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노동자들의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니 이를 우회하기 위해 온갖 수를 짜냈을 것이다. 그 꼼수가 개별 노동자에게 받은 형식적인 동의서다. 부천지청 진정인은 말했다. “퇴직금 200만원 없어도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자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되잖아요?” 쿠팡CFS는 수천명의 물류 노동자들과 매일 계약을 맺지만, 수년째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일용직 노동자는 맞나.
쿠팡 사건은 노동자 권리를 무력화하려는 자본과 그를 돕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사실을 묻으려 했던 공직자들,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원칙대로 일했던 공직자들이 대립하는 최전선에 있다. 이 사건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든 폄하하려고 했던 한 회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됐다. 시민의 편에서 소임을 묵묵하게 해낸 부천 근로감독관과 문 검사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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