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자 ‘가격 인상 자제’ 압박 안 먹히자…칼 빼든 공정위

2025-04-14

라면∙과자 등의 가격이 치솟자 정부가 담합 가능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물가 안정에 동참하라는 점잖은 요청이 먹히지 않자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선 모양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14일 오전 공정위는 농심∙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크라운제과 등 식품회사 5곳에 조사관을 파견했다. 이들 기업이 사전에 협의해 가격을 함께 인상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볼 목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 상승했다. 2023년 12월(4.2%)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1월(2.7%)과 2월(2.9%)보다 더 많이 뛰었다. 3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1%)과도 격차가 크다.

이는 식품업체가 연이어 제품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1월 대상이 마요네즈와 소스류 가격을 19.1% 인상한 걸 시작으로 2월에는 롯데웰푸드가 제과∙아이스크림 가격을 올렸다. 이어 CJ제일제당이 햄과 만두 가격을 11% 인상했고, 3월엔 농심∙남양유업∙동원F&B도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이달 초에도 오뚜기와 팔도가 라면 가격을 올렸다.

심상치 않은 가격 상승세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수출 둔화가 불가피해진 흐름에서 물가마저 뛰면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의 회복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어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월 11일 17개 식품기업과 간담회를 열어 “가격 인상을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달엔 박범수 차관이 추가로 간담회를 갖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런데도 가격 인상 흐름은 계속됐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 7일 간부회의에서 “가격 인상 등과 관련해 담합이나 불공정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기업의 가격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단 업계는 ‘담합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22년 전후 소맥이나 팜유 같은 원재료 가격이 급등했지만,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했고, 최근엔 고환율이 지속해 부담이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요 식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은 CJ제일제당(5.8%)∙농심(4.7%)∙대상(4.2%) 등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제조업 영업이익률 6.1%(한국은행)보다 낮다. 예외적으로 10%대 높은 영업이익률을 나타내는 삼양식품이나 오리온 등은 해외 매출 비중이 높다.

식품업체는 보통 해외보다 국내에서 제품을 싸게 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수 비중이 큰 업체는 더욱 고민이 크다”며 “폭리가 아닌 최소한의 경영 정상화 차원”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가격 상승 요인이 없는데 가격을 올리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과는 거리가 멀다는 항변이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민생 밀접 품목은 지난해 4월 이후 상시 감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같은 시기 가격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조사에 착수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 공백기를 노린 업체들의 ‘꼼수’ 인상이란 시각도 있다. 2년 전만해도 업계의 태도는 달랐다. 2023년 6월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라면값을 언급하고 나서자, 열흘도 안 돼 업계는 줄줄이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민간기업의 가격 결정에 개입해 문제를 덮는 식으로 갈 건지 회의가 드는 게 사실”이라며 “압박 대신 조율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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