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계(思想界)는 1950~1960년대 지성인의 필독서였다. 장준하 선생(1918~1975)이 사재를 털어 1953년 4월 창간한 사상계는 해외 문예사조의 수입 통로였고 지식인들의 활동 무대였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민주·양심 세력을 대변했다. 꺾이지 않는 필봉은 4·19혁명 기폭제가 됐고, 5·16쿠데타 이후엔 박정희 독재에 맞섰다. 장준하 선생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투철했다. 그는 사상계 창간호 권두언에서 “인간은 복잡하고도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며, 개념적 추상적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고, 그 목적 실현을 위한 의지적이며 적극적인 활동과 반성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잡지 수준을 넘어 시대의 좌표라는 찬사를 받았던 사상계가 내년 2월 재창간된다.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폐간된 지 55년 만이다. 사상계는 그동안 몇 차례 복간 시도가 있었다. 1998년 6월호(통권 206호)와 2000년 6월호(207호)가 발행됐고, 온라인으로도 몇 차례 추진됐지만 재정난과 준비 부족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재창간 작업을 주도하는 장준하 선생의 장남 호권씨는 “기후위기, 팬데믹, 인공지능, 신냉전, 양극화 등으로 인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사상계가 다시 등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지러운 세상이 장준하 선생과 사상계를 다시 소환한 셈이다.
원조 사상계가 계몽 정신으로 무장했다면 재창간 사상계는 ‘계몽의 계몽’을 추구한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작금의 혼란이 계몽 부족 때문이 아니라 계몽 자체의 결함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통일보다 평화에 역점을 두고, 기성 정치에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겠다고도 했다. 재창간 첫 호는 ‘응답하라 2025’라는 제목으로 해방 80주년, 한·일 수교 60주년인 2025년에 대한 진단과 과제를 담을 계획이라고 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 석학 48명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한다. 컬러풀한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을 지향하고 인쇄는 흑백으로만 한다. 겉은 요란하지만 알맹이는 없고, 매체는 많지만 헛된 말과 삿된 글이 범람하는 시대. 춥고 어두운 겨울 초입에 내년 봄 사상계의 복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