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대통령 당선인, 'IRA 폐지' 계획 중
美 전기차 2위 현대차그룹, 전략 수정 불가피
테슬라·GM 등 美 업체도 영향 받을까? "특혜 줄 수도"
현대차그룹, 성 김 고문 사장 앉혔다… 美 대응 총력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포지티브적 해석 : 다같이 못 받는 보조금, 다같이 못 파는 전기차
#네거티브적 해석 : 단단히 준비 했는데도… "이건 예상에 없었는데?"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의 두번째 집권을 허락하면서 미국을 최대 시장으로 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있거든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도 테슬라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고요.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로 올라선 비결에도 미국에서의 성공이 주효했죠.
트럼프 승리 직후, 바이든 정부의 자동차 정책에 모든 전략을 짜맞췄던 현대차그룹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정부가 내세웠던 주요 정책을 하나하나씩 무너뜨릴 작정인데요. 집권도 하기 전부터 트럼프의 정권인수팀이 바이든이 만든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4년간 펼쳐질 '트럼프 2기' 시대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IRA의 폐지는 현대차·기아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트럼프 시대가 펼쳐진 후를 가정해봅시다. 우선 그전에 트럼프가 폐지하겠다는 IRA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는데요. IRA는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해서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법으로, 현대차그룹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전기차 구매시 보조금을 무려 7500달러(약 1050만원)나 지원해주는데, 대신 미국에서의 생산을 조건으로 걸어 투자를 하게 만든거죠. 미국에서 전기차를 싸게 팔고 싶으면 전기차 만드는 공장을 지으라는 뜻이 내포돼있습니다.
2년 전 이 법안이 생겨난 뒤 현대차그룹이 처음 결정한 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장에만 무려 7조를 들였죠. 안그래도 배터리값 때문에 비싼 전기차에 보조금까지 없다면 살 사람이 확 줄어들 테니까요. 이 공장만 세워지면, 보조금 받으며 전기차를 팔고, 시장 경쟁력도 커질 거라 믿었죠.
석유 산업과 내연기관차의 부흥을 줄곧 내세웠던 트럼프가 두번째 승리를 거머쥐면서, 현대차의 이런 꿈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최근 대선 승리 후 미 의회 상원, 하원을 전부 공화당이 점령하면서 이제 맘먹으면 IRA 폐지가 가능한 상황이 돼버렸거든요.
공장이야 한번 세워지면 앞으로 생산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직접 보조금만큼의 금액을 깎아주며 장사를 해온 현대차·기아 입장에선 허무한 마음이 커진 상황입니다. 공장이 다 지어지는 날만 목빠지게 기다렸는데,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고 조건없이 투자한 꼴이 된거죠.
바이든 정부는 '미국에 투자하면 그만큼의 혜택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어왔지만, 트럼프는 '왜 투자 기업에 돈을 줘야하냐'는 기조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미국에 투자해서 기업이 얻는 이득이 더 많은데, 돈까지 쥐어줄 필요가 있냐는 거죠.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더 악독하게 '미국 우선 주의'를 펼 예정입니다.
IRA 폐지 이후의 현대차는 미국에서 어떻게 전기차를 팔아야 할까요? 흘러가는 상황이 막막한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대해볼 만한 것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우선 'IRA 폐지'가 갖는 의미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엎어버리기 위한 트럼프의 전략인 건데요. 전기차 보조금이 없어지면 미국에서 전기차를 팔기 힘든 건 현대차 뿐 아니라 테슬라, GM, 스텔란티스 등 미국 자국 업체들도 포함되는 겁니다.
특히 대선 전 트럼프에 걸었던 대표 지지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7월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하면 테슬라의 판매가 부진할 수 있지만, 경쟁사에게 더 치명적일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요. 미국 업체, 수입 업체가 모두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 전기차에 주는 보조금 정책은 기본적으로 일몰을 전제로 만들어집니다. 전기차가 어느정도 보급되기 전까지만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보조금을 주고, 폐지되는 건데요. 이미 중국과 유럽 일부 국가는 전기차 세액공제를 없애기도 했습니다. 미국도 전기차를 샀다고 보조금을 줄 수 있는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것이죠.
언젠가 세액공제가 없어지면 결국 모든 전기차 제조사들은 다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합니다. 또 트럼프가 내연기관을 아무리 주창한다고하더라도, 전기차는 전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고요. 미국 시장에서 앞으로 4년 간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현대차·기아는 지금처럼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이어나갈 수 밖에 없다는 뜻이죠. 미국 외 시장에선 전기차 경쟁이 앞으로도 이어질 테니까요.
현대차·기아가 이미 지어놓은 전기차 전용공장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우리기업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혼류 생산'입니다. 시장 상황에 맞춰 생산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죠. 앞서 지난 2분기 현대차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조지아 공장에 하이브리드차 생산 라인을 투입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기아가 트럼프 2기로 맞을 위기는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줄어든다는 것이지, 아예 차를 못팔게 된다는 것은 또 아니거든요. 미국내에서 현대차·기아 판매의 대부분은 가솔린과 하이브리드차 등 내연기관이고, 특히 수익성 좋은 하이브리드차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수익성과 판매량을 지키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만, 강력한 '자국 우선 주의'를 내건 트럼프의 '입'을 언제든지 면밀히 주시할 필요는 있겠죠. 미국차가 한국차보다 안 팔리는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인물은 아니니까요. 테슬라, GM 등 미국 업체들의 원성이 커지면 자국 업체에는 없던 특혜를 만들어줄 수 도 있고요.
2년 전 갑작스런 IRA로 미국 시장에서 위험에 빠진 현대차그룹은 대응에 늦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번 트럼프 정부 당선 가능성을 앞두고는 오래전부터 단단히 대응책을 마련해왔을 겁니다.
지난 15일 발표된 현대차그룹 대표이사·사장단 인사에서는 올 초부터 현대차그룹에 합류했던 성 김 고문이 사장으로 정식 영입됐는데요.. 성 김 사장은 미 국무부 출신의 국제 정세 전문가로,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핵심 요직을 맡아온 인물입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변수가 많아진 만큼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위해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충동적인 결정으로 이미 한국 업체들에 한차례 긴장감을 줬던 트럼프의 미국이 내년부터 4년간 다시 찾아옵니다. 최근 5년 사이 무서울 정도로 몸집을 키우며 글로벌 자동차 판매 3위를 석권한 현대차그룹으로선 첫 트럼프 당시보다 더 큰 숙제를 안게 됐습니다. 그간 변방의 작은 자동차 업체에 쏟아졌을 수많은 풍파가 효과적인 위기 돌파 전략과 대응책을 만들어낼 능력치를 끌어올려줬길 기대해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