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 된 기억, 그게 바로 나”...에세이 『두 얼굴의 남자』낸 비엣 타인 응우옌

2025-11-04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54)의 소설 『동조자』(2015)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수용소에 갇혀 자백을 시작하는 화자 ‘나’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자, 이중간첩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소설은 출간 이듬해인 2016년 응우옌 작가에게 퓰리처상을 안겼고,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HBO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성실한 이민자로 살아온 부모를 둔 ‘베트남인’이자, 미국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미국인’이기도 한 작가는 자신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기반으로 주인공을 그려냈다. 소설의 첫 문장에 등장한 ‘두 얼굴의 남자’(A Man of Two Face)가 응우옌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제목이 된 건 필연일지 모른다.

에세이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4일 오전 작가를 화상으로 만났다. 이 책은 현지에선 2023년에 출간돼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를 쓰려면 나의 깊은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나의 삶보다 전쟁, 기근, 식민주의와 두 번의 난민 생활을 겪은 부모님의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하다고 본다. 에세이를 쓰더라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쓰려 했다”고 했다.

에세이의 시작은 그가 대학생이던 19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전쟁의 상흔을 안고 미국에 온 어머니가 우울증과 치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일을 열 페이지 분량의 글로 썼다.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당시 감정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응우옌은 “30년이 지난 후에야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인 팬데믹 기간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이유”라고 밝혔다.

“기억은 바(Ba)와 마(Má)에게서 시작된다. 그들의 모습은 사진 같고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 같다. … 녹화된 테이프로만 남아 있는 그런 이야기.” 그의 글에 등장하는 ‘바’와 ‘마’는 각각 베트남어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는 말이다. 응우옌은 “전쟁과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 사람과 가정의 기억은 파편화되어 남는 것 같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에세이를 쓰며 비슷한 경험을 한 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했다. 에세이에도 인용한 한국계 미국 작가 차학경의 『딕테』는 그중 하나다. 응우옌 작가는 “산문, 시, 비평이 뒤섞인 포맷을 『두 얼굴의 남자』의 형식으로 고른 것은 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함”이라며 “해방감을 느끼며 썼다”고 했다.

책은 응우옌의 기억 조각을 무작위로 담은 상자 같다. 응우옌이 담은 조각들은 가족의 개인적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미국 내 이민자들의 공통된 경험을 상기시키고, 이민의 역사가 길어지며 뒤섞인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직면한다. 2020년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서, 가해를 저지른 백인 경관의 망을 봐준 이는 베트남의 소수민족 출신인 투 타오 경관이었다. 응우옌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투 타오의 얼굴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알게 된 사건과 스스로 겪은 사건을 교차 서술하며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내보였다.

소설 『동조자』와 『헌신자』에서 보여줬던 풍자적 서술도 여전하다. “블랙 유머(black humor)는 생존의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전쟁같이 무거운 경험을 문학에서 가볍게 만들어내는 것은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풍자하는 대상은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문제다. 그가 에세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로 표기한 것도 미국 정치를 풍자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검열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시키기 위해 트럼프의 이름을 지워 표현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을 “정치적 작가라고 생각”하고, “정치적이면서도 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쓰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동조자』, 『헌신자』로 이어지는 ‘동조자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이다. “주인공들이 역사를 함께 겪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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