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세월호·이태원 참사 등 기록 정윤석 감독
“같이 간 기자는 상 받았는데…예술가 배제 안 돼”

지난 1월19일 서울서부지법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건물 유리를 깨고 경찰 기동대 방패를 빼앗았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까지 색출하려 시도했다. JTBC 취재진도 시위대를 따라 법원으로 들어갔다. 법원 내부에서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건’을 생생하게 촬영해 보도했고 지난 2월 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같은 날 현장에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정윤석 감독(44)도 있었다. 정 감독 역시 시위대를 따라 법원으로 들어가 이를 촬영했다. 그러나 정 감독은 지난달 10일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건의 다른 피고인 62명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김우현) 심리로 31일 열린 1차 공판기일에서 정 감독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다”며 변론 분리를 요청했다. 변론 분리는 병합돼 있던 관련 사건들을 각각 별도의 공판절차에서 따로 심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 감독 측은 “공소장의 시간과 장소 모두 사실과 맞지 않고, 영화 촬영을 위한 정당한 목적으로 법원에 들어갔다”며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또 특수건조물침입죄에 해당하더라도 이는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중요한 국가적 위기상황이었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기록자와 예술가로서의 소명”이라는 것이다.
정 감독 측은 검찰의 기소가 “모순적”이라고도 주장했다. JTBC 기자는 법원 판사실이 있는 7층까지 들어갔는데 상을 받았고, 정 감독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재판부는 검찰에 “JTBC 기자가 언급됐는데 그는 입건이 안 됐느냐?”고 물었다. 검찰은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하자면, 현재 검찰에 수사 중인 부분은 없다”고 답했다.
정 감독 측은 변론 분리도 요청했다. 정 감독이 다른 피고인들과 공동으로 기소되면서 신상이 노출돼 “좌파 빨갱이” “프락치”로 찍혀 모욕을 입는 등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정 감독가 같이 기소된 보수 성향 유튜버가 정 감독의 신상을 공개했다.
앞서 정 감독 측은 “서부지법 사태가 단순 폭동이 아닌 정치적인 사건이고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데도 이런 역사 현장 취재에 예술가는 왜 차별받고 배제돼야 하는지를 묻겠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법원은 “통상의 공판 절차로도 진술할 기회가 충분하다”며 배척했다.
정 감독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이태원 참사 등을 기록해 왔다. 지난해 12월4일 계엄 해제 당일부터 3개월간 국회의 협조를 받아 1·2차 탄핵안 국회 본회의 투표를 촬영하고, 이후 서울 여의도·광화문·한남동 탄핵 찬반 집회, 국가인권위원회를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