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같다” 칭찬받아도 현장 떠나는 복지사들

2025-03-30

3월30일은 ‘사회복지노동자의 날’이다. 정부는 2011년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제정을 계기로 이날을 ‘사회복지사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정부와 달리 ‘사회복지노동자의 날’로 부른다.

정부는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돌봄 현장은 사실상 민간에 위탁했다. 낮은 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불안정한 환경에 사회복지 분야 노동자들은 날로 소진되고 있다. 당연히 돌봄의 미래도 보장될 수 없다.

경향신문은 지난 29일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는 6년차 사회복지사 유청우씨(31),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5년차 사회복지사 김모씨(31), 김희라 공공운수노조사회서비스노조 사회복지지부 지부장, 서울시사회복지원 해산 문제로 투쟁하고 있는 10년차 장애인활동지원사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장을 만났다.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영역에서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처한 가장 큰 불안은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대표적인 비정규직 일자리는 중앙·지방 정부의 단기 시범 사업이다. 유씨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 돌봄 사업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면 한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데, 실제로 그 기간이 끝나면 고용 보장을 받기가 어렵다”며 “나도 이전 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는데 고용 불안이 커서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여기저기 기관을 옮겨다니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경력은 다음 근무지에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회복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아 임금으로 받기도 힘들다. 보건복지부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통해 적정 수준을 권고하지만 이에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사업장이 불이익을 받을 일은 없다. 김 지부장은 “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라고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가이드라인 보다 낮게 (임금) 책정이 가능하다”며 “그마저도 최하위 급수의 초봉이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다”고 말했다.

‘공짜 노동’을 감내하는 때도 많다고 했다. 김씨는 “아동 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있어서 2교대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일하는데, 야간수당은 물론 휴일 수당과 시간외근무수당을 아예 주지 않는다”라며 “사회복지를 위해 일하는 것인데 정작 종사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는 근무 요건을 강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좋은 일 하시네요” “천사 같다”는 칭찬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을 ‘선의’에만 기초한 봉사로 평가하는 인식이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노동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김 지부장은 직업 특성상 봉사성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에, 노동권을 침해당한 피해 상황에서도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유씨는 “사회복지 분야의 노동자들은 약자의 권리를 지원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는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는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면 ‘이기적이다’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했다.

사회복지 분야 일자리의 노동환경, 임금이 모두 열악하니 해마다 인력 유출이 심화하고 있다. 오 지부장은 “장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되고 노동자들이 유입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노동 시장 중 약자들만 모이고 이를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하던 복지관에서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전보를 당해 일을 쉬고 있는 김씨는 “다시 업계로 돌아가 이런 노동조건을 다시 견딜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사회복지종사자 보수수준 및 근로여건 실태조사’에서 사회복지분야 노동자 3명 중 1명(31.6%)은 이직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면 서비스 이용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 서비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성’이다. 사회복지 서비스 시범 사업이 갑자기 종료되면서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이용자는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김 지부장은 “사용자에게 가닿는 긍정적인 영향을 면밀하게 파악하기보다는 정부가 설정한 정량적인 성과지표에 도달하지 않으면 갑자기 예산을 전액 삭감하거나 정책을 폐지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돌봄이란 무엇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노동으로서가 아니라도 돌봄은 일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고, 저 역시도 일상에서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돌봄을 받고 있다. 돌봄의 공백이 생겼을 때 얼마나 큰 타격이 발생하는지 코로나19를 겪으며 인지하게 됐지 않나. 노동자의 권리가 최소한이라도 보장돼 이 공백을 막아야 한다.”

인터뷰에 응한 사회복지 노동자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사회복지 서비스 대다수를 민간에 위탁한 채로 책임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노동환경과 돌봄의 질이 모두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예산을 제공하는 가장 큰 주체이지만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김씨는 “일하던 복지관도 공식적으로는 지자체 소속이지만, 해당 지자체에서 책임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복지관 아이들을 위한 정책도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지부장은 “민간 영역에 맡겨진 돌봄은 사회적 책임과 가치는 빠진 채로 시장 논리에 의해서만 생각되어진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책임지는 공공성의 강화가 가장 시급한 해결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 지부장은 “공공영역에서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예산과 정권 색채 등 여러 사정 때문에 돌봄 인프라가 무너져 이용자가 손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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