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개편①]징벌적 세율 대기업도 '벌벌’…경제 발목 잡는 '대못'

2025-03-12

여야 상속세 개편 놓고 이견 속 합의 가능성 제기

재계, 최고세율 인하까지 논의 대상에 포함돼야

높은 상속세율에 중소기업은 폐업 고려…대기업도 부담 커

최근 상속세를 두고 25년 만에 개편이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높은 상속세율은 국내 기업들에게는 독으로 작용한 만큼 이번 개편을 통해 승계 부담이 낮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최고세율을 놓고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 재계 내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장기적인 운영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상속세 개편이 시급한 문제다. 이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직면한 상속세 문제를 살펴보고, 기업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준모 기자]상속세 개편을 두고 여야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현재 50%인 최고세율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최고세율 인하는 부자 감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야는 한발씩 물러서면서 합의점을 찾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 내에서는 최고세율 인하를 포함한 개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높은 세율로 인해 기업의 경영권 유지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경영을 포기할 상황에 직면했고, 대기업조차도 경영권 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 오너들의 재산은 대부분 기업 경영에 필요한 지분에 쏠려 있다. 대를 거듭할수록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져 기업이 국가에 귀속되거나, 사모펀드 등 자금력을 갖춘 외부 세력에 경영권을 빼앗기는 사례가 생길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지분을 팔기 전까지 상속세를 유예해주거나 최대주주 할증까지 합해 최대 60%에 달하는 상속세의 최고세율을 인하해주길 바라고 있다.

◆여야 상속세 개편 공감대…협의도 ‘급물살’

최근 상속세 개편에 대해 여야가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합의점은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상속세 개편안을 보면 일괄공제 한도액와 배우자 공제액을 높이는 것이 골자다. 일괄공제 한도액은 기존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배우자 공제액은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은 최고세율 인하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개편안에서는 일괄공제 한도를 10억 원으로 높이고, 배우자 상속세를 폐지하는 것은 물론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추자는 게 핵심이다.

그동안 여야가 대립하면서 상속세 개편은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배우자 상속세 폐지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히면서 여야 합의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국민의힘 측도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 과제로 남겨두겠다는 입장이다.

또 민주당도 상속세 개편에 대해 신속처리안건 지정 방침을 철회한 만큼 여야의 협의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상속세 개편은 가계 유지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기업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추가적인 세부 내용 변경이 필요하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상속세, 기업 경영권 방어에 가장 큰 걸림돌

현행 상속세는 재계 내 경영권 방어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상속 재산 대부분이 기업 지분인 경우 정부가 기업의 대주주로 등극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미약품과 같이 주가가 떨어진 경우 지분만으로는 상속세를 낼 수 없는 사태가 나타나기도 하고, 넥슨과 같이 정부가 대주주가 되는 사례도 무시할 수 없다.

이재용 삼성 회장은 상속과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부침을 겪었으며, 경영 세습을 포기하겠다는 말까지 비춘 바 있다. 이런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상속 지분이 이혼 소송으로까지 연관되며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고, 현대차 정의선 회장 역시 아직 상속과 지배구조개편이 과제로 남아 있다. 현대차는 과거 헤지펀드 엘리엇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피해는 더욱 막심하다. 기업 경영을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견실한 기업조차 개인 재산이 없으면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까다로운 가업승계 지원제도 요건과 신청절차를 손봐야 한다고 입장이다.

대한상의 측은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상속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승계를 기피하는 사례가 곧 증가할 것"이라며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만 보는 부정적인 시각 대신 기술력과 일자리, 책임의 대물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속세를 인하할 경우 절약된 세금이 기업의 R&D 자금으로 선순환 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다양한 방안책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계 “기업 지속 운영 위해서는 최고세율 인하 필수”

하지만 재계 내에서는 최고세율 인하가 빠진 상속세 개편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일괄공제 한도 상향과 배우자 상속세 폐지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최고세율 인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계는 꾸준하게 상속세에 대한 최고세율 인하를 요청해왔다. 경제6단체(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상속세에 대해 조속한 처리를 호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대한상의 ‘조세제도 개선과제 건의서’를 통해 상속세 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재계가 최고세율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경영권 유지와 우리나라 경제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있는 국가의 평균 최고세율은 26%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해당한다. 또 상속세가 없거나 자본이득세 등으로 전환한 나라도 14개국이나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최고세율은 50%지만 상속재산이 주식인 경우 ‘최대주주 20% 할증평가’가 적용돼 실제 상속세율은 60%까지 높아진다.

재계는 이런 높은 최고세율이 기업의 운영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분 100%를 가진 기업인이 2세에 기업을 승계하면 지분은 40%로 줄어들게 된다. 2세 기업인이 다시 3세에 기업을 주면 지분은 16%까지 낮아진다. 경영권 탈취를 위한 적대적 M&A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은 높은 최고세율로 경영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은 현금유동성이 낮기 때문에 상속세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대부분의 자산은 대출을 위해 담보로 잡혀 있어 차라리 사업을 접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기업 역시 경영에 어려움이 따른다. 대기업의 경우 상속세 규모가 크기 때문에 회사 지분을 팔아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까지 직면하게 된다. 결국 경영권이 외부 세력으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는 리스크가 커지는 구조다.

또 대기업의 경우 승계를 준비하면서 상속세 부담으로 주가 부양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별세한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해 삼성 대주주 일가는 상속세가 12조 원에 달했다.

결국 최고세율을 낮춰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투자를 늘리면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상속세로 인해 결국 기업의 대주주가 정부가 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징벌적 과세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만큼 기업들에게는 최고세율을 포함해 상속세가 개선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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