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춘석 무소속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이 번지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연방 의원들의 주식투자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의원들의 주식 거래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공론화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연방의원들의 개별 종목 주식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며 “만약 미국인 누구라도 (주식으로 돈을 번) 의원들처럼 거래한다면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센트 장관이 인터뷰에서 겨냥한 정치인은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민주·캘리포니아)과 론 와이든(민주·오리건) 상원의원이다. 펠로시 전 의장은 벤처 캐피털리스트 남편과 함께 2억 6300만 달러(약 3600억원)의 주식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몇 달간 확인된 매매 차익이 600만 달러(약 82억원)가 넘는다고 한다. 펠로시 부부는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주가가 치솟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엔비디아’ 콜 옵션 매수로 18억원을 벌었고, 2022년 대규모 반도체 지원책 발표 직전에도 엔비디아 콜옵션 매수로 13억원을 벌었다.
와이든 의원은 약 1980만달러(약 273억원) 규모의 주식 자산을 보유해, 최근 한달간 약 83만달러(약 11억원)의 수익을 내는 등 그가 신고한 포트폴리오 가치는 123% 상승했다.
베센트 장관은 펠로시 전 의장과 와이든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의 수익률은 헤지펀드들도 부러워할 정도”며 “이는 (정치)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인에게 봉사하려고 워싱턴에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연방 의원들은 자유롭게 주식 투자가 가능하다. 2012년 제정된 ‘의회 내부정보 이용 주식거래 금지법’에 따라 1000달러 이상의 주식 거래 내역을 45일 이내 공개하기만 하면 된다. 의원들의 내부 거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지만, 공개 시한을 넘기더라도 200달러 정도의 약한 처벌을 받을 뿐이다.

베센트 장관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만 거론했지만, 공화당 의원들 역시 주식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적 친(親)트럼프 의원으로 꼽히는 마조리 테일러(공화·조지아) 하원의원은 70만 달러(약 9억원)이던 주식 자산을 4년만에 2100만 달러(약 290억원)로 늘렸다. 특히 지난 4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를 전격 유예하기 직전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등의 주식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상호관세 유예 발표 4시간 전 소셜미디어(SNS)에 ”지금이 매수하기 매우 좋은 시점”이라는 글을 올려 “주가 조작에 해당한다”(워싱턴포스트)는 지적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가족들의 투자와 관련해서도 이해충돌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주식 투자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자, 미국 증시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공개한 투자 종목을 따라서 투자하는 상품까지 판매되고 있다.

연방 의원들은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내용의 법안을 꺼내들었다. 상원의 공화당 조시 홀리(공화·미주리) 의원은 지난 4월 이른바 펠로시 전 의장의 이름을 딴 ‘펠로시법’을 발의했다. 의원과 배우자의 주식 보유와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하원에서도 안나 폴리나 루나(공화·플로리다) 의원 등이 유사한 법안에 대한 9월 강제 표결 추진을 예고한 상태다. 과거 하원의장 자격으로 관련 법안 처리를 거부해왔던 펠로시 의원은 결국 지난 4월 여론의 압력이 거세지자 “법안 통과에 찬성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법안이 처리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현지 소식통은 “2022년 이후만 놓고 봐도 양당에서 10건 이상의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무산됐다”며 “특히 다선 의원들은 대부분 침묵 속에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