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6일 피아트·크라이슬러자동차(FCA)와 푸조·시트로앵(PSA)그룹이 합병해 시가 총액 510억 달러를 웃도는 거대 자동차 제조사 ‘스텔란티스’가 공식 출범했다. 업계 8위, 9위였던 자동차 회사들이 합쳐져 세계 시장의 약 9%를 점유하는 글로벌 4위 기업으로 몸집이 커진 것이다. 스텔란티스 새 경영진은 연구개발(R&D) 중복 투자 등을 줄여 연간 6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는 합병 시너지를 기대했다. 이를 통해 뒤처진 전기차 기술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하면 가솔린·디젤엔진 자동차 생산 시대가 끝날 2030~2040년대까지도 강자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3년가량 지난 지금 그 모든 게 ‘스텔란티스의 오판’으로 판가름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닷지·마세라티·오펠 등 14개 기존 브랜드를 재빨리 정리하지 못하다 보니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너무 늦어졌다. 이렇게 타이밍을 놓친 사이 선도적 기술력을 갖춘 테슬라, 품질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현대차·기아, 초저가 공세를 펴는 중국산 제품에 밀리고 치이는 신세가 됐다. 스텔란티스의 올 상반기 순매출은 14% 감소한 850억 유로, 순이익은 48% 줄어든 56억 유로에 그쳤고 이후 실적 전망도 암울하다.
경영 위기에 빠진 스텔란티스는 이달 9일 폴란드 전기차 시장 진출 계획을 백지화한다는 극약 처방을 발표했다. 27일에는 전기차 피아트500e 등을 제조해온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의 공장을 다음 달 5일부터 일시 가동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회사인 복스홀도 이날 영국 루턴의 밴 자동차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방침과 전 세계적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악재까지 겹쳐 스텔란티스의 앞길은 더욱 험난해질 듯하다. 첨단산업 기술 경쟁에서 한 번 뒤지면 아무리 덩치를 키워도 만회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다. 현대차·기아 등 우리 기업들도 스텔란티스를 반면교사 삼아 첨단 기술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시장 변화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혁신하는 전략으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