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향 취업’ 만연…성과 보상 늘려 이·전직 쉽게 해야

2025-05-11

열린 노동시장을 위한 개혁 방안

한국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와 정성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녀를 대학, 가능하면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OECD 회원국 38개국과 비회원국 11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고등교육기관(대학) 이수율은 53.5%(2023년)로서 OECD 평균(40.7%)보다 약 13%포인트 높았다. 특히 청년층의 고등교육기관 이수율은 69.7%로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의 학생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지출은 OECD 국가 평균보다 약간 높은데,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투자는 상당 부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47만4000원(2024년)으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가 시작된 2007년(22만2000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사교육비 지출 차이가 큰데 월 소득 300만원 미만 가구 대비 월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는 약 3배에 이른다.

한국 성인 대학 이수율 높지만

고용률은 OECD 평균보다 낮아

근로자 숙련 과잉 속 하향 취업

취업 후 역량 키워도 보상 미흡

고령층의 인적 자본 수준 저하

역량 보상 늘리는 시장 만들어야

이처럼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한국은 교육을 통해 쌓은 국민 역량을 실제로 시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의 전체 고용률은 75.7%로 OECD 평균보다 낮다. 게다가 글로벌 기준 한국 성인의 역량은 기대 수준 이하인 데다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CC)를 분석한 데 따르면 2주기(2022∼23년)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역량은 5개 수준으로 구분한 구간 중 하위 두 번째 구간(500점 만점에서 226∼275점)이었다. 초등학생(만 10세)의 평균 역량 수준(1수준 미만 및 1수준과 유사)보다는 높지만 우리나라 성인의 20%는 언어 능력과 수리 능력, 문제 해결력의 모든 영역에서 1수준 이하다.

더 큰 문제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성인 역량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1주기(2011∼12년) 조사와 2주기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언어 능력은 1주기(273점)보다 2주기(249점)에 24점, 수리 능력은 1주기(263점)보다 2주기(253점)에 10점 떨어졌다. 모든 세대에서 역량이 하락했고 나이가 많은 세대일수록 하락 폭이 더 크다. 언어 능력의 경우 16~24세는 21점, 25~34세는 33점, 35~44세는 34점, 45~54세는 42점 하락했다. 수리 능력은 16~24세는 10점, 25~34세는 21점, 35~44세는 21점, 45~54세는 25점 떨어졌다.

지난 10년간 고학력화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됐지만 성인 역량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고학력화보다 부정적 효과를 내는 고령화가 압도적인 효과를 낸 것이다.

역량 강화 유인 적은 학력 중심 사회

우리나라 성인의 역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도 않으나 숙련(skills) 과잉은 심하다. 1주기 PIACC 조사의 수리 능력 기준으로 비교 대상 국가 중 ‘숙련 부족’은 우리나라가 뒤에서 5번째, ‘숙련 과잉’은 앞에서 5번째다. 숙련 부족(혹은 숙련 과잉)은 동일 직업군에서 적정 숙련을 가지고 있다고 본인이 응답한 근로자 100분위 중 하위 5분위 값(혹은 상위 5분위 값) 보다 객관적인 수리 능력 점수가 낮은(혹은 높은) 근로자의 비중이다.

일자리의 숙련 요구 수준에 비해 개인의 숙련 수준이 높거나 개인의 숙련 수준에 비해 일자리에서 요구되는 숙련 수준이 낮은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많은 근로자가 하향 취업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에 머물면서 인적 자본이 축적돼 숙련도가 높아져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PIACC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주기나 2주기 모두 학력이 높으면 고용률과 시간당 임금이 같이 상승한다. 반면에 언어 능력이나 수리 능력이 올라가도 오히려 고용률은 떨어지거나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

이는 노동시장 진입 전에 대부분 축적하는 학력이라는 스펙은 보상받는 데 비해, 역량이나 노동시장에서 일하면서 축적되는 인적 자본은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가 학력 중심 사회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개인 입장에서는 노동시장 진입 후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역량을 강화하더라도 이것이 고용률 증가로 귀결되지 않는 만큼 역량 강화에 참여할 유인이 적다.

역량이 올라가면 임금이 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간 수준 이상의 고역량자의 경우 역량 상승에 따른 임금 증가가 OECD 평균과 비슷한 수준인 데 비해 중간 수준의 미만의 역량 보유자는 OECD 평균과 비교해 임금 상승 폭이 굉장히 낮아 고역량자와 저역량자 간의 임금 격차가 크다는 문제도 있다.

인적 자본 감가상각률 높은 한국

역량이 노동시장에서의 성과와 괴리되는 현상은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노동시장 성과와 역량 수준의 관계가 우상향의 직선 형태, 즉 역량이 올라가면 고용률이 올라가 노동시장 성과로 보상받는 양상을 보이는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수직의 직선 형태다.

높은 교육열로 부모 허리가 휠 정도로 자식에 많은 투자를 하다 보니 청년층 대졸자의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고, 청년층은 인적 자본 수준이 매우 높은 상태로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요구하는 숙련 수준에 비해 개인의 숙련 수준이 과도하다 보니 많은 청년이 노동시장 진입 초기에 실업자로 남거나 하향 취업하게 된다. 이런 일자리 미스매치로 인해 노동시장은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학력에 따른 확실한 보상은 이뤄지지만 노동시장 진입 후에 교육이나 훈련을 통한 역량 강화에 대한 보상은 미흡하다 보니 우리나라 인적 자본의 감가상각률은 매우 높다.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인적 자본의 쇠퇴가 가장 빠른 국가, 그래서 높은 수준의 인적 자본을 보유하고 청년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만 노년에 가면 인적 자본의 수준이 매우 낮은 국가로 분류된다.

학교 스펙에 대한 보상 과다

일생 동안 3~4개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평생학습시대에 경쟁력 있는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개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노동시장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 대수술이 필요하다. 6월 초 출범하는 새 정부 노동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노동시장 개혁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노동시장 진입 전에 결정되는 학력, 특히 학교의 레벨이 일생 동안의 커리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학교 스펙에 대한 보상을 줄이고 노동시장 진입 이후 훈련이나 교육으로 얻는 실질 역량에 대한 보상을 늘려야 한다. 이는 학력이나 연공이 아닌 역량과 성과에 따라 보상하고 채용과 훈련, 승진, 전환 배치 등 인적자원 활용에서도 역량과 성과가 중요한 열린 노동시장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에 이직한 근로자 10명 중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긴 근로자는 한 명꼴이었다. 2023년 기준 청년층 비정규직 근로자 3명 중 1명 만이, 같은 사업장에서는 5%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정규직 전환 비율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두터운 벽이 세워져 있는 닫힌 노동시장에서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삼수를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 재수·삼수를 할 수밖에 없다.

역량과 성과에 기반을 둔 열린 노동시장의 모습은 어떨까. 훈련 등을 통해 쌓은 역량이 국가 자격 등으로 입증된 중소기업 근로자의 대기업으로의 전직이 활발하고, 출산 및 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이 된 여성이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의 복귀가 용이해지고, 50세 전후로 주된 직장에서 밀려나는 중년 근로자나 임시직과 세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노인 근로자가 확연히 줄어들고, 재벌그룹별로 쌓은 철옹성 같은 벽이 허물어져서 임원 등 고위직도 같은 계열사가 아니더라도 전직이 가능하게 된다.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 적극 추진해야

과도한 교육열과 청년층의 생산직 기피 현상, 그에 따른 중소기업의 구인난 등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너무 많은 고졸자가 졸업 직후 대학에 진학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런 만큼 열린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첫 출발은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선 취업 후 진학 정책’과 같은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을 다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취업뿐 아니라 노동시장 진입 이후에도 고졸자의 경력 개발을 지원하는 체제도 정비해야 한다. 학교에서 쌓은 역량을 보여주는 학력과 노동시장 현장에서 쌓은 역량을 입증하는 자격을 연계하는 ‘국가역량체계(National Qualification Framework: NQF)’ 수립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

열린 노동시장 구축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중심으로 소수 근로자의 기득권 보호에 활동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노동조합의 자성과 양보도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독일과 같은 실질적 산별 노동조합체계 구축도 고려해야 한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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