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교폭력의 상처에서 회복으로 3

2025-12-09

행복을 여는 창

“우리 잘해보자고, 몇 시간을 목 터져라 얘기했는데, 그 녀석은 또 사고를 쳤어요.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성하는 기미가 있었는데, 어쩜 이렇게 뒷북을 칠까요?” 말썽꾸러기 녀석을 선도해 보려고 1시간 이상을 지도한 선생님이 가슴을 치면서 호소하신다.

그럴 때 마다 나의 대답은 비슷하다. “10여년 이상 만들어진 청소년들의 습관인데, 선생님의 말씀 1시간으로 좋아진다면 선생님은 엄청난 능력자인 거죠.”

사실 그렇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기질을 포함하여 주변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고 습관을 형성한다. 이 습관의 틀은 나름대로 견고해서, 애정과 인내심 속에서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생활 지도가 필요 하다. 선생님들의 이런 노력이 있다면 1년쯤 내외로 조금씩이나마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청소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말미암은 경우는 그 특성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심각한 경우에는 의학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기존의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기질과 뇌 반응 체계를 지니고 있다. 어떤 청소년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떤 청소년은 흥분을 조절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와 연습이 필요하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테스토스테론이 급증하고, 세로토닌·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흔들리면서 감정은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흔들린다. 전두엽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충동을 조절하기 어렵고, 편도체는 작은 말이나 눈빛에도 ‘위협 신호’를 과하게 보내곤 한다. 청소년은 마음속에서 이미 불꽃이 튀고 있는데, 겉으로는 그저 “말썽꾸러기”, “노는 청소년”으로만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청소년들을 어떻게 회복의 길로 이끌 수 있을까.

그 여정에는 청소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부모, 학교, 지역사회라는 세 공동체가 함께해야 한다.

먼저 부모의 역할은 청소년 마음속 폭풍에 귀를 기울여주는 데서 시작된다. “왜 그랬어!”라는 꾸중보다 “그 순간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묻는 태도는 청소년의 뇌에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부모의 공감적 반응은 편도체의 과활동을 안정시키고, 청소년의 불안을 줄여준다. 생물학적으로 감정 조절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부모의 따뜻한 시선은 약물이나 처벌보다 훨씬 강한 치유의 힘을 가진다.

학교의 역할은 처벌과 낙인보다 ‘회복과 성장’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교사는 청소년의 뇌가 아직 미완성임을 이해하고, 감정 조절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더 세심한 지도가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학교가 청소년을 벌점과 기록으로만 규정하면 청소년은 더 깊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지만, 학교가 지원과 회복을 선택할 때 청소년은 다시 길을 찾기 시작한다.

지역사회는 청소년에게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제공하는 제3의 울타리다. 다양한 청소년 문화 및 복지 활동을 지원하여 청소년의 도파민 체계를 안정시키고 정서적 균형을 되찾도록 돕는다.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일은 단순히 가해자를 벌주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청소년의 뇌와 마음을 이해하고, 그 청소년이 처한 생물학적 조건 위에 부모의 공감, 학교의 교육적 지지, 지역사회의 따뜻한 연결망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일이다. 어떤 청소년도 처음부터 폭력적이지 않다. 어떤 청소년은 조금 더 복잡한 마음의 구조를 갖고 태어나고, 어떤 청소년은 더 민감한 신경계를 지녀 충동을 조절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학교폭력의 상처를 회복으로 이끄는 길은 비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해에서 시작된다.

동행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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