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후반에 성악 입문…100세까지 노래해야죠”
체육 교사·사업체 운영하다 은퇴
아내와 함께 지역 가요교실 등록
어린 시절 꿈·끼 되살아나 ‘재미’
완성도 높이려 전문가 레슨 받아
입문 초 과도한 연습에 성대 결절
전국 콩쿠르 출전해 각종 상 수상
서울·부산 등 동호회 초청 줄이어
지난해 독창회 열고 10여곡 소화
“무대서 노래 하는 게 삶의 동력”
피아노 반주가 흐르자 88세의 노신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가곡을 열창했다. 호흡과 목소리에서 머뭇거림이 없이 내달렸다. 예종해의 하루는 성악으로 시작해 성악으로 마무리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구순이 코앞인데도 열정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노쇠함은 저 멀리 물러났다. 그는 연 50여 회 무대에 올라 가곡을 부르며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성악 바라기다. 100세 시대의 진정한 노익장은 그를 두고 한 표현이다.
성악과의 만남은 비교적 늦은 노년기에 찾아왔다. 젊은 시절 그의 삶은 성악과 무관하게 변화무쌍했다. 중고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하다 사업체 운영으로 방향을 틀어 기업가로 살았다. 유리그릇 생산업체를 운영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다 아내의 허리병으로 IMF 직전에 20년 가까이 하던 유리그릇 사업을 과감하게 접었다. 은퇴 후에도 젊은 시절 열심히 산 대가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웠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았다.
“노년의 삶을 막연하게 떠올렸고, 그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노래였죠.”
사실 그는 흥이 많은 흥부자였다. 중고등학교 시기, 친구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겼다. 그런 끼가 은퇴 후에도 여전히 핏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고, 2014년에 아내와 함께 구청에서 운영하는 가요교실에 등록하는 것으로 노래인생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가요였다. 가요교실은 심화과정까지 섭렵했다. 하지만 왠지 신명이 나지 않았다. 100여명이 넘는 수강생들 중에 남성은 그를 포함한 2명이 전부였는데, 그런 영향도 없지 않았다.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대구 남구 대덕문화전당에서 운영하는 가곡교실이었다. 일반인, 그것도 70대 후반에 성악을 입문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아 우려도 있었지만, 의외로 노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성악을 하면 할수록 잠자던 재능이 꿈틀댔다. 체육 전공자 출신답게 그가 가진 좋은 체력은 노래하기에 유리했다. 물론 체격이 좋으니 목소리도 좋았다. 무엇보다 복식호흡으로 노래하면서 폐활량이 좋아진다는 것은 노년기에 얻는 선물이었다.
“노래는 호흡이 특히 중요한데, 성악을 하면서 폐활량이 좋아지고 더불어 건강도 더 좋아졌습니다. 성악의 효과를 몸으로 체감했죠.”
성악에 대한 확신이 들면서 성악을 단순한 취미로 두지 않았다. 완성도 높은 소리를 위한 열망이 커져만 갔고, 그럴 때마다 연습에 연습이 이어졌다. 전문가로부터 레슨을 받는 것도 불사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레슨을 받으며, 자신의 노래를 점검했다. 구순이 멀지 않은 나이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고 배울 경우 제 소리의 문제를 고칠 수 없습니다. 조각가가 원석을 다듬어야 보석이 되듯이 아무리 좋은 목을 가졌어도 전문가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해서 전문가의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노래를 할수록 성악은 몸이 악기라는 것을 절감했다. 몸 관리는 필수였다. 계속 노래하기 위해 수영, 헬스, 스파 등의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노래는 호흡이 절반이기 때문에 운동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체력이 있어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몸 중에서도 목 관리는 성악에서 필수다. 목에 해로운 것은 일찌감치 멀리했다. 담배와 술을 끊는 결단도 감행했다. 고기 등 좋은 음식을 챙기는 것도 열심이다. “성악은 속이 든든해야 힘 있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노래인생이 마냥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성악 입문 초기에 과도한 연습으로 성대 결절을 겪기도 했다. 3개월간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목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부쩍 목에 신경을 쓰고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악을 향한 10여년의 노력은 적지 않은 결실을 안겼다. 각종 성악콩쿠르에 출전해 기량을 뽐냈고, 다수의 수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국 성악콩쿠르를 비롯해 경안국제성악콩쿠르, 예가전국성악콩쿠르, 박태준아마추어한국가곡콩쿠르 등에 출전해 각종 상을 수상했다. “저보다 20년 이하인 30~40대와 겨뤄 수상한 것이어서 더 벅찼습니다.”
지금도 콩쿠르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달려간다. “콩쿠르가 음악적인 역량을 확인하는 바로미터라는 생각과 수상할 때 오는 성취감”이 콩쿠르 도전의 이유가 됐다. 상금이 있든, 없든 수상은 즐거운 일이고, 수상할 때마다 지인들에게 한턱 내는 것도 행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외부에서 찾는 곳도 생겨났다. 대구는 물론이고, 부산, 마산, 경주, 서울 등 전국의 가곡동호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무대에 섰다. 1년에 50여회, 한 달에 4~5회는 무대에 선다. 주요 레퍼토리는 ‘그리운 금강산’, ‘가고파’, ‘보리밭’, ‘사랑이며, 어디든 가서’ 등의 우리 가곡과 ‘오 솔레미오 ‘, ’돌아오라 소렌토로‘, ’아 목동아‘ 등의 외국 성악곡이다.
“무대에 서면 관객과 교감하며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또한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무대가 스승이라는 생각으로 누군가 초대하면 기꺼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발성연습은 소음을 우려해 집 주변 학교의 텅 빈 운동장에서 한다. 성악은 고음역을 낼 때 머리가 울리는 느낌인 공명현상인 두성을 기본으로 하는데, 특히 연습할 때 두성에 신경을 쓴다. “목은 열어놓고 복근에서부터 울리는 공명으로 소리를 냅니다.”
지난해 6월에 꿈의 무대인 독창회도 열었다. 바리톤 예종해의 독창회는 총 2부로 구성, 10곡을 노래했다. 프로 성악가도 10곡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은데, 여든 일곱의 그가 무려 10곡을 거뜬하게 소화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악보 없이 노래한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치열하게 연습했는지 가늠이 된다. “평소에 갈고 닦은 것이 독창회에서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가요 ‘고맙소’는 아내를 무대에 불러 아내 손을 잡고 불렀다. 아내고 관객들도 눈물을 훔쳤다.
솔로 못지않게 합창에도 열심이다. 그는 현재 남구종합사회복지관 햇빛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합창과 독창은 그의 성악을 지탱하는 양대 산맥이다. 특히 합창은 단원들과 서로 배려하며 호흡을 맞춰야 하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독창을 할 때는 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기쁘고, 그 곳에서 에너지는 극대화됩니다. 반면에 합창은 하모니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누구나 외롭지만 노년기의 외로움은 더 절박하다. 하지만 그에겐 외로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동안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 그의 곁엔 언제나 음악이 있고, 음악에서 삶의 동력을 찾은 결과다. 나이 들어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온다.
목표는 100세까지 노래하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99세 노인이 이태리 민요를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 “지난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은 제겐 큰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위해 계속해서 노래할 것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