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식물 바이러스에 관심과 투자를

2024-09-23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생명체인 바이러스는 공포의 존재로 인식되면서 부정적인 영화나 소설의 소재가 되어 왔다. 2011년에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은 바이러스를 이용한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유인원의 지능을 높여 인간에게 위협을 가져온다는 설정을 배경에 깔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시리즈 영화 ‘레지던트 이블’은 엄브렐러라는 제약회사가 바이러스로 생물병기를 개발하던 중 유출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으로 옮겨졌는지를 과학적 데이터를 활용해 신빙성 있게 그린 프레스턴의 소설 ‘핫 존’은 1994년 출간과 동시에 32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 작품은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묘하게 기시감을 준다. 이미 의학계에서는 바이러스를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상용화되는 현실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 유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은 위 작품들에서 설정된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인류에게 안겨 주고 있다.

1884년 프랑스의 찰스 챔버랜드가 세균의 크기보다 더 작은 구멍을 가진 필터를 발명해 세균을 걸러내는 데 성공한 이후, 1892년 러시아의 이바노프스키는 이 필터를 이용하여 당시 러시아에 창궐한 식물 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미지의 병원체가 세균보다 작고 전염성이 있으며, 밝혀지지 않은 과정을 통해 기주식물 내에서 증식한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1898년 이 실험을 더욱 발전시킨 마르티누스 베이예링크는 병원체가 분리된 세포에서만 증식된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1935년 미국의 스탠리가 이 병원체의 결정체를 순수분리함으로써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라는 병원체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낸 공로로 1946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바이러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00년대 초반이지만 실제로 바이러스는 오래전부터 인류를 괴롭혀 왔다.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는 광견병에 걸린 개와 관련된 법률 규정이 있으며, 기원전 116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 미라의 얼굴, 목 등에서 천연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던 과학자들은 당시에 이미 폴리오바이러스가 원인인 소아마비가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역사상 유명했던 인물들도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집트 공략 이후에 사망한 알렉산더 대왕은 서나일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의 루즈벨트는 소아마비를 이겨내고 대통령이 되었다. 로마의 명군인 5명의 황제, 오현제(五賢帝)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사적으로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직전 에이브러햄 링컨 등은 천연두에 걸렸다.

기원전 430년 스파르타와 패권을 다투던 아테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 중에 아테네 열병으로 알려진 천연두의 대발생으로 많은 병력을 잃어 결국 패전하였으며, 서기 165~180년에 대발생했던 천연두는 로마패망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16세기 남미에서는 스페인군이 옮긴 천연두로 인해 중남미 인구의 90%가 사망하는 등 바이러스는 인류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과학적으로 그 존재가 처음으로 규명된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는 식물의 바이러스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람이나 가축의 바이러스 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간과되었다. 그렇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농산물 국제교역 증가로 식물 바이러스는 새로운 위협이 되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궤멸적 피해를 주고 있다.

전염경로가 다양하고 복잡한 식물 바이러스의 특성과 경제적인 이유로 식물 바이러스를 직접적으로 방제할 수 있는 약제 개발은 매우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서 날로 증가해 큰 피해를 주고 있는 다양한 식물 바이러스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에 국가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진우<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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