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병원에 남았나…“의대 증원 필요하지만 정부의 고압적 태도로 대화 더 단절”

2025-02-18

의대 증원 찬성하지만…정부 방식은 고압적

“전공의들은 떠나기만 했을 뿐 어떤 대안도 없어”

‘비정상적인 뉴노멀’은 끝내야…공론장 논의 중요

지난해 2월 20일 전국 주요 병원 전공의 대부분이 일터를 떠났지만 A씨는 현장에 남았다. 몇 안 되는 ‘일하는 전공의’ 중 한 명인 A씨를 지난 12일 만났다. 그를 붙잡은 건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는 사명감이었을까.

“거창하게 사명감이랄 건 없어요. 아무런 대안 없이 한꺼번에 떠나자는 전공의들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 집단주의, 전체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그래도 다 떠나면 어떻게 하나. 몇 명은 현장에 남아야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A씨는 자신의 견해를 스스럼없이 털어놨지만, 신원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전공의는 익명 커뮤니티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선생님들 중에서도 ‘감귤’(복귀한 전공의를 비하하는 말)로 찍힌 분이 있어요. 정말 많이 불안했어요.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가 익명으로 운영되는데, 신상털기와 비방이 많아요.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걸 보니 정말 부끄러웠어요. 정화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커뮤니티 운영진도 문제예요. 지금 (계엄 국면에서) 광장과 유튜브에서 극우가 선동해서 사회 공론장을 오염시킨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A씨는 현장을 떠난 의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사직 자체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싶지 않아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문제는 떠나기만 했을 뿐 어떠한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고 의대 입학 정원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2000명이라는 숫자’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위해 추진한 증원인지, 총선 카드였는지 여전히 의구심이 들어요. 근거를 갖고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했는데 정부가 제시한 수치는 신뢰하기 어렵고 추진 방식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 정부가 증원 명분으로 내세운 지역의료와 공공의료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중증 응급 소아를 비롯한 필수의료만 강조하는 것도 의료의 범위를 축소한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지점이다. 그는 “모든 의료가 필요하다”며 “필수의료만 강조하는 건 오히려 국가에서 보장해야 할 의료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의료원은 여전히 운영난에 허덕이지만 지역 의사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물을 부어서 지역으로 그 효과가 고루 퍼지게 하려면, 지역 의사제를 통해 지역 티오(TO·정원)를 만들든지, 공공 의대를 세우든지 해야 하는데 그런 세부적인 정책 설계 없이 숫자만 늘리면 피부·미용 의사만 늘어날 수 있어요. 이렇게 숫자만 늘려서 배출된 의사가 무슨 사명감이 있겠습니까.”

A씨는 집단 사직으로 맞선 전공의도 문제지만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도 폭력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대화 방식은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어요. 노동조합들을 짓누르고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것처럼 의사도 밟으면 될 것으로 본 거죠. 정부의 권위주의적 태도로 대화가 더 단절된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이어진 의료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들이다. 그는 ‘지금 이런 시국에 암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했다는 암 환자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분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지금 임시방편으로 병원이 굴러가는 걸 보고 ‘이상한 뉴노멀’이라고 하는데, 이런 뉴노멀을 계속 끌고 가선 안 됩니다.”

그는 “의료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시민들도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들, 지나친 상업화와 과잉 의료를 근절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료인,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건강보험 보장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보험료가 오르는 것도 감수해야 해요. 여론은 나쁘겠지만 장기적으로 필요한 조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성적 상위 1% 의사보다 의대 교육을 견딜 만한 능력과 사명감, 인성을 갖춘 의사가 필요하다 생각해요. 의대 교육 과정에서 지역 사회에서 환자를 만날 기회, 병원 밖 경험을 늘려야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가 더 많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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