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 저장대의 질주…학구열인가, 돈의 힘인가?

2025-03-04

중국 저장대학교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 칭화대·베이징대 등에 가려 ‘지방대’로 분류되던 이 대학이 최근 글로벌 대학 평가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다. 이공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속속 등장하며 ‘지방대의 반란’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영국 대학평가기관 QS가 발표한 2024년 세계대학 랭킹에서 저장대는 44위를 기록했다. 연구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네덜란드 ‘레이던 랭킹’에서는 상위 10% 논문 생산 비율이 하버드대에 이어 세계 2위다. 최근 발표된 ‘네이처 인덱스 AI’에서도 저장대는 논문 증가율 801%라는 기록을 세우며 세계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저장대의 성장은 단순한 학구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대학·교수·학생 그리고 동문의 적극적인 투자와 창업 문화가 뒷받침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 논문 돈이 됩니까?”

저장대가 위치한 저장성 항저우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이런 지역적 특성 덕분에 저장대는 학생들에게 안정적인 취업보다 창업을 독려한다. 창업 경진대회를 열어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는 학교 차원에서 적극 지원한다. 저장대 졸업생 중 20%가 5년 이내 창업에 도전한다. 또래 졸업생들이 스펙 쌓고 자소서 지도를 받는 동안 그들은 벌써 사장이다.

동문 기업들의 성공 사례도 많다.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梁文峰), 일론 머스크의 ‘Grok’ 개발팀 핵심 멤버 장궈둥(張國棟), 항저우 스타트업 ‘6소룡’ 창업자들 상당수가 저장대 출신이다.

교수들도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AI 로봇 기업 딥로보틱스의 창업자인 주추궈(朱秋国)는 여전히 저장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공정 자동화 기업 중쿵과기(中控科技)의 창업자 추젠(褚健) 역시 부총장을 지냈다. 연구 성과가 논문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산업화로 이어진다.

저장대(중문학과 81학번)를 졸업하고 얼마 전 저장대에서 은퇴한 정윈(郑昀 62)교수는 저장대는 줄곧 이공계열에 진심이고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학교라고 평가한다. “학생들의 논문을 토대로 실물 전환율을 평가하고 타당성 있는 프로젝트는 전폭적으로 지지해준다”며 “한마디로 돈이 된다 싶은 사업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학생과 교수들 사이에서 돈 되는 사업에 대한 토론이 자유롭다”고 한다. 뜨거운 학구열 뒤에는 돈의 힘이 작용했다.

대학과 동문이 직접 투자에 나서

저장대는 2020년 ‘저장대학 홀딩스그룹’을 설립해 디지털 경제·첨단제조·바이오의약·신소재·신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학생과 교수의 창업 아이디어에 대학이 직접 투자자로 나선다.

동문의 적극적인 자금 지원도 있다. ‘테무(Temu)의 아버지’ 황정(黃崢), OPPO 창립자 단융핑(段永平) 등 저장대 출신 기업가들은 ‘주즈즈번(九智資本)’과 ‘어우팡(藕舫) 엔젤투자’ 등을 설립해 후배 창업자들에게 투자한다. 동문 펀드가 항저우 혁신 기업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30%가 넘는다. 심지어 ‘3차 창업 룰’을 도입해 실패해도 세 번까지 재도전할 기회를 보장하는 시스템까지 마련했다.

영재를 모아 최고의 자원과 연결

저장대는 ‘될성싶은 떡잎’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주커전칼리지(竺可楨學院)를 통해 전국 상위 1% 영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이들에게 최고의 교수진과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원하는 지도교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한때 중국 부자 1위를 차지한 PDD그룹의황정(黃崢)도 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이런 영재교육은 저장대만의 전략이 아니다. 중국과학기술대학은 ‘소년반’ 운영으로 16세 미만 학생들을 조기 교육해 20대 초반에 박사과정을 마치게 하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대학들은 ‘천인계획’·‘쌍일류 프로젝트’ 등 인재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

저장대 캠퍼스에는 지금도 마오쩌둥(毛澤東)의 전신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오늘날 저장대를 변화시킨 힘은 마오쩌둥주의가 아니라 기술혁신과 자본의 결합이다. 그 배경에는 단순한 학구열이 아닌 창업과 투자 그리고 수익 창출이라는 현실적인 동기가 자리한다. 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저장대의 성공은 세계 고등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대학들이 학문적 연구를 넘어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지금 한국 대학들은 어떤 전략을 마련해야 할까?

김매화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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