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집착, 가품 인생

2025-08-26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어머니를 여의고 수녀원에 맡겨진 그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이다. 불후의 명품 제국을 건설한 그의 시작은 이렇게 불우했다. 그 과거를 거름 삼아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하고, 진짜와 가짜 진주를 섞어 쓴 목걸이로 ‘패션의 민주화’로 불리는 혁신을 일궈냈다. 그가 남긴 명품과 가난에 대한 명언의 울림이 큰 이유다. 대표적 명언을 하나만 꼽자면 이것. “사람들은 럭셔리의 반대가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천박함이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관련 뉴스로 들썩이는 지금, 떠오르는 단어는 다름 아닌 ‘천박(淺薄)’이다.

김건희 여사에게 평범한 40대 직장인의 중위 연봉(약 4999만원, 2025년 기준)을 털어도 못사는 시계를 건넸다는 사업가 서모씨. 그는 JTBC 인터뷰에서 “유니클로 입던 영부인이 ‘외국 정상 부인들은 치장을 많이 한다, 나도 명품이 좀 필요하다, 굉장히 엠베러스했다’고 내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영어를 굳이 쓴 것부터 민망하다. 영어단어 ‘embarrassed’의 미국식 표준 발음은 철자 그대로 읽은 ‘엠베러스’가 아니라 ‘임배러스드’다. 영어를 섞어 쓰면 ‘있어 보인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인다.

김 여사가 핑계라며 “가품을 샀다”고 했던 거짓말은 염치 실종 천박함의 끝이다. ‘가품’이란 말로 치장했지만, 그냥 가짜, 짝퉁, 모조, 남 따라 하기다. “외국 정상 부인들이 치장을 많이 한다”는 말 역시 낯 뜨겁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취재를 4년여 하며 만났던 영국 및 중동의 공주와 왕비, 기업가들의 배우자들은 명품에 집착하는 걸 외려 부끄럽게 여겼다. 영국 왕실 앤 공주는 검소하다 싶을 정도였다. 대기업 오너들 중엔 구두 뒤축이 닳으면 버리기 아깝다고 해진 부분만 잘라내어 실내화로 신는 인물도 있었다.

명품은 역사의 유산이자 장인 정신이 빚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발한다. 평범한 청소부가 명품 드레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자린고비와 우여곡절을 겪는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의 주인공의 순수한 추앙과, 김 여사의 욕망은 결이 다르다. 김 여사가 명품을 원한 동기와 획득한 방식 모두 낯뜨겁다. 명품에 집착하다 해괴망측 거짓말로 스스로를 해외토픽감으로 만든 그는 스스로의 인생을 가품으로 끌어내렸다. 가브리엘 샤넬의 또 다른 명언으로 글을 맺는다. “우리 모두는 오리지널로 태어났다. 왜 남이 한다고 따라 하는가. 가짜가 되지 말라.”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