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뱀의 해…뱀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2025-01-11

오래전 스리랑카에서 비단구렁이가 담긴 자루가 동물원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뱀이 국가검역 대상이 아니어서 동물원으로 바로 들어왔다. 비단구렁이 상태를 확인하려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루를 열었다. 그러자 봉인이 풀린 듯 자루 속에 있던 알 수 없는 곤충들이 날아올랐고 몇 마리는 내 목덜미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을 뒤적여 잡아보니 납작한 파리였고 눌러도 잘 죽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옷을 벗으니 두 마리가 붙어 있었다. 다음날 비단구렁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비늘 사이에 깨알 같은 진드기가 많았다. 진드기에게 물린 부위를 치료하느라 여러 날 비단구렁이를 가까이했는데 성질도 온순하고 촉감도 그만하면 괜찮았다. 신진대사가 느린 뱀은 주사도 며칠에 한 번만 맞으면 됐다.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 불시착한 외계생물 같은 이 친구에게 호기심이 갔다.

뱀은 크는 몸에 맞게 탈피를 한다. 동물원에 사는 노랑 아나콘다는 허물을 벗기 전 온몸이 탁한 회색빛으로 변한다. 습한 나라가 서식지다 보니 습도가 낮은 한국의 겨울에서 탈피를 잘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사람이 들어가 대신 벗겨주기도 한다. 탈피를 끝마치자 노란색과 검은색 무늬가 선명해졌다. 자료를 찾아보니 선명한 무늬는 번식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 뱀과 앵무새들이 사는 열대관에 가보니 새끼 아나콘다 30여 마리가 새장을 감은 채 앵무새들을 향해 Y자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아나콘다는 몸속에서 알을 부화해 새끼를 낳는 난태생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생 저학년 때는 오히려 동물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서 그런지 개구리나 뱀을 손으로도 잘 잡았다. 방과 후 친구들과 뱀을 잡으러 다닌 적도 있는데 머리가 삼각형이면 독사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소주 됫병을 들고 독사를 찾아 야산을 헤맨 지 수 시간 후 우리는 삼각 머리 뱀을 발견했다. 집게로 뱀의 머리를 잡아 병에 넣었는데 병마개가 없어 나올까 봐 걱정됐다. 한 친구의 제안으로 솔잎을 따다가 병에 넣었더니 독사는 피부가 따가웠는지 솔잎에 은신이 됐는지 얌전히 병에 들어 있었다.

대부분 뱀은 독이 없다고 한다.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독사는 살모사다. 국외는 코브라가 맹독으로 유명하다. 살모사와 코브라는 머리 뒤쪽의 독주머니가 독니(fang)와 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점은 독니가 입 앞쪽에 고정된 코브라에 반해 살모사는 독니가 입 안쪽에 누워 있다가 입을 벌릴 때 수직으로 세워져 물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수의사 후배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지인의 아들이 코브라에게 물려 서울 병원 중환자실에 있고 해독제(안티베놈)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어 동물원에까지 전화했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코브라에게 물리다니! 뱀을 키우고 있을 만한 동물원에 전화를 돌렸다. 시도 끝에 서천에 있는 기관에 살모사가 있어 군산의 한 병원에서 안티베놈을 갖춰놓고 있다는 소식을 알아냈다. 바로 후배를 통해 서울 병원에 그 사실을 전달했다. 며칠 후 후배에게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군산에서 서울까지 빠르게 전달된 안티베놈으로 아이가 회복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사람에게 일부러 다가와 무는 독사는 없다고 한다. 비단구렁이나 아나콘다 같은 큰 뱀은 먹이를 힘으로 제압하지만 독사는 힘 대신 독을 사용한다. 국내 유일의 독사인 살모사는 크기가 작다. 살모사도 삼킬 수 있는 사냥감에 독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데 사람은 일단 살모사가 선호하는 크기를 훨씬 초과한다. 살모사는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 어미를 죽인 뱀이란 뜻인 살모사는 위에서 언급한 노랑 아나콘다처럼 난태생이다. 알을 낳는 다른 뱀과 달리 새끼를 낳는 살모사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 오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살모사는 귀가 없는 대신 복부 피부와 폐로 느끼는 진동을 신경에 전달하여 소리를 듣는다. 방에서 사람이 조용히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다. 살모사가 어디 숨어 있을 것 같은 의심이 든다면 땅에 발을 몇번 굴러 도망갈 기회를 주는 것이 현명하다.

얼마 전 충북의 한 수족관에서 문의가 왔다. 살모사를 전시하고 있는데 위험해서 독주머니를 제거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코브라에게 물린 사건을 겪었던지라 안전을 위해서 시도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료 수의사들도 물릴 수 있어 살모사가 오기 전 안티베놈을 미리 구입해 놓았다. 정작 데려온 살모사는 수술하기에는 너무 작았지만 다음을 위해서 독주머니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마취로 잠든 살모사의 입을 벌리자 자동으로 독니가 노출되었다. 날카로운 독니가 살을 찢으면 독니를 둘러싸고 있는 관에서 독이 뿜어져 나오는 구조였다. 조영제를 사용해 독주머니를 방사선 촬영했다. 살모사를 돌려보내며 안티베놈을 구비해 놓기를 당부하였다.

시골집에 살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부엌에서 어머니의 비명이 들렸다. 달려가 보니 싱크대 밑에서 구렁이가 나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생태적인 환경에 살아서인지 어머니는 구렁이 꿈을 꾸셨다. 한번은 구렁이 두 마리가 어머니에게 다가왔는데 친할아버지가 달려와 막대기로 한 마리를 던져버렸고 한 마리는 용케 어머니 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구렁이 꿈이 나의 태몽이다. 구렁이는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아먹어 옛사람들은 구렁이와 한집에서 같이 살았다고 한다. 그 많던 구렁이는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구렁이의 멸종을 막고자 연구하는 기관의 요청으로 구렁이의 복강을 열어 위치추적기 삽입 수술을 한 적이 있다. 비늘이 손상되면 탈피 시 몸통이 조여지거나 잔존 허물이 미생물의 온상이 된다고 하여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촘촘히 박혀 있는 비늘을 건드리지 않고 아래 피부를 절개해 나가니 논문에서 본 대로 지그재그 모양이 됐다. 뱃속을 열어보니 몸에 맞게 폐도 길고 간도 길었다. 신장처럼 양쪽에 있는 장기는 앞뒤로 놓여 길고 좁은 복강에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수술은 마취된 뱀의 심장 소리를 도플러 장치로 확인하면서 했다. 교육용으로 녹음해 놓았는데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우리와 비슷한 심장 소리라 신기해한다.

수의학의 상징은 지팡이를 감고 있는 뱀이다. 의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지팡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학과 치료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것이라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신 아폴로의 아들로 태어나 버려졌으나 개와 염소가 돌봐줘서 목숨을 건졌고 아버지 아폴로와 반인반수인 켄타우로스 키론에게 의학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친절을 베푼 대가로 뱀이 그의 귀를 핥고 치유와 부활의 비밀을 가르쳐 줘 종국에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이라도 용량에 따라 약이 될 수 있다. 뱀독은 암, 뇌졸중, 심장병, 고혈압의 잠재적 치료제로 연구되고 있다. 뱀은 평생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성장하면서 자신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더욱 밝아진다. 새해 뱀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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