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선] 윤석열과 뭉티기

2024-10-02

“뭉티기, 요즘도 합니까”.

2022년 2월 18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구 월배시장을 찾아 한 말이다. 대구 대표음식인 ‘뭉티기’를 언급하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자리한 시민들은 열띤 박수와 환호로 지지를 보냈다.

당초 일정은 유세가 아닌 전통시장 순방이었으나 인산인해를 이룬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유세 차량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서민들의 정서를 자극한 그의 짧은 연설에 민심이 움직였고 영리한 판단이었다는 정계의 평가가 따랐다.

윤 후보는 “사회생활을 대구에서 시작했다. 월배지역은 직원들과 월말 뭉티기와 소주로 회식하던 곳”이라며 인연을 강조했다.

개인 기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통상 뭉티기는 혼자 즐기는 음식이 아니다. 친구나 직장 동료, 가족과 연인 등 마주 보거나 나란히 앉아 술도 한 잔 곁들인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질겅질겅 열심히 저작(咀嚼)한다. 대화 속에서도 내 것을 즐긴다. 술잔을 부딪치며 마음도 나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대통령 5년 임기 절반을 넘긴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30일 국정운영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은 지지율 최저치를 경신 중이고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 역시 맥을 못 추며 여권 전체가 총체적 난국이다. 윤 정권 출범 이후 각종 리스크가 연일 터지고 있는데다 이로 인한 진위 여부 공방에 전통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영남, 보수, 60대 이상이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오는 11월 현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다. 역대 정권이 그랬듯 임기 반환점 이후 공직사회는 미래 권력을 향해 눈을 돌린다. 여권이 최저 지지율이 경신되는 상황에서 국정이 잘 굴러가리라는 것은 희망 고문에 가깝다. 하지만 요동치는 민심에도 의정 갈등, 특검 등 각종 현안에 대한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고 국민들에게는 불통의 이미지만 각인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말 열린 22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다. 현직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한 건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진영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최근에 당대표와의 독대 수용 여부 논란 속에 체코 방문 귀국길 한동훈 대표를 대하는 윤 대통령의 냉랭한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2020년 발행한 베스트셀러 도서인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제목을 상기시키며 윤 대통령의 처신을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여야는 진영별로 ‘시간은 나의 편’이라는 착각 속 셈법에 빠져있는 듯 하다. 여당은 거대 야당과 대통령을, 대통령은 의료계와 야당을,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핑계삼아 마치 시소 타듯 서로의 탓만 한다. 가뜩이나 팍팍한 삶에 찌들어 가고 있는 국민들에게 정치적 피로감까지 덧씌우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정 동력과 국민 신뢰를 어디서 되찾아야 하는지 잊은 지 오래다. 지지율 하락을 단순 지표로만 여긴다면 곤란하다. 보수 정권 재창출을 기대했던 지지층마저 돌아서게 한 배경과 원인을 언제까지 거야(巨野) 탓만 할 것인가.

프랑크족의 전통인 ‘건배’는 각자 자기 잔의 술 방울이 다른 사람의 잔에 떨어지게 했다. 술잔에 독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식이 담겨있다. 술잔을 세게 부딪칠수록 정직한 사람으로 여겼다. 국민에게 ‘전 정권 심판’을 호소하며 “편 가르지 않고 국민 여론을 소중하게 청취해 국정 운영하겠다”던 그는 불과 2년여 만에 눈을 마주 보지도, 술잔을 부딪치는 법도 잊은 것 같다. 윤 대통령이 뭉티기 한 점에 소주 잔을 들고 여당 대표와, 야당과, 의료계와 허심탄회하게 마주 앉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현 정권 출범 2년 여가 지난 현재 대선 후보 시절 큰 인기를 모은 윤 대통령의 ‘어퍼컷 세리머니’에 박수로 화답할 국민들이 얼마나 될지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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