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포로 신원 공개는 인권 침해” 우려 큰데… 정부는 뒷짐

2025-01-23

우크라, 북한군 포로 중계하며 국제여론전

“北 남겨진 가족들 보복 우려…자제해야”

북한인권 단체들, 젤렌스키에 공개서한

尹정부, 北인권 중요하다면서 “입장 없다”

우크라이나군이 전장에서 생포한 북한군의 얼굴과 신문 내용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면서 이들과 가족에 대한 북한 당국의 보복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북한군의 신원을 노출하는 것은 전쟁 포로의 인권 보호를 약속한 제네바협약에 위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인권시민연합, 물망초,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등 북한인권 단체들은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북한군 전쟁 포로의 신원 공개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들 단체는 “(우크라이나가) 생포된 북한군 병사들을 겁주거나 굴욕감을 주려는 악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 믿는다”면서도 북한군 포로의 얼굴, 나이 등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제네바협약의 인도주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생포한 북한군 2명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왔다. 이들의 얼굴과 나이, 생포 과정, 생활상 등을 노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측의 심문에 응하는 영상을 게시하기도 했다. 북한군 파병을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국제여론전 성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군 포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제네바협약 위반일뿐더러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 특성상 이들과 가족에 대한 보복이 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네바협약 제13조는 “포로는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 돼야 한다”, “포로는 특히 폭행, 협박, 모욕 및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항상 보호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전쟁 포로는 대중 앞에 세워지거나 노출돼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에 남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내부 정보를 진술한 북한군 포로가 북송될 경우 처형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병사가 ‘한국어로 된 사랑 영화’를 틀어달라고 했다고도 공개했는데, 북한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근거로 처벌될 수 있다”며 “이런 식으로 (포로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면 앞으로 북한군 병사들이 투항하려고 할지, 붙잡혔을 때 정보를 공유하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 단체들도 서한에서 “투항한 병사들과 그 가족들까지 반역자로 가혹한 형벌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군 포로를 의사에 반해 러시아나 북한으로 송환하면 안 된다고 촉구했다.

북한인권 증진을 강조해온 윤석열정부는 정작 이 문제에 대해선 뒷짐을 지는 모양새다. 전날 통일부 주재로 외교부·법무부·국무조정실·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참석해 열린 북한인권정책협의회에서 북한군 포로의 신원이 노출된 데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인권 문제 주무부처인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북한군 포로 문제와 관련해 “현재로써는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어떤 상황이 진행되는지에 따라 달렸지 않을까 보고 있다”고만 했다.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우크라이나에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제일 좋은 파트너는 대통령인데 부재 상황이라 안타깝다”며 “최상목 권한대행이나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같은 외교·안보 책임자가 우크라이나 측에 북한군 송환, 신원 공개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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