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선포한 비상계엄에 전공의 등 의료인들이 48시간 이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의료계가 밤새 들썩였다. 몇몇 의료인은 체포를 우려해 피신하는 등 신변의 위협을 느낀 것으로 파악됐다. 의사단체를 비롯한 보건의료단체들은 입장을 내고 일제히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 3일 계엄사령부는 제1호 포고령에서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밝혔다.
이는 의·정 갈등으로 수련병원을 떠나 있는 전공의들을 지목한 것이다. 전공의 약 1만5000명은 정부의 의대 증원안에 반대하며 지난 2월 말 수련병원을 단체로 이탈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으로 이들 중 8.7%(1만3531명 중 1171명)만 수련병원에 출근 중이나, 나머지는 6~7월 중 사직서가 정상적으로 수리돼 불법 파업 상태라고 볼 수 없다. 사직 전공의 중 절반가량은 일반의 등으로 의료기관에 재취업해 일하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계엄령으로 인한 신변의 위협을 느껴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 피신했다.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는 “저는 (의·정 갈등) 사태 초반에 실제로 수사기관들로부터 겪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비상계엄 소식을 보고 인근 지인의 집으로 바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 지인분은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상처를 꿰매고 있었는데, 본인은 대체 어디로 ‘본업에 복귀’해야 하는 거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어제 지인들과 저녁 식사하면서 얘기하던 중에 계엄 소식이 전해졌다”며 “의·정 갈등 상황 때문에 경찰 조사도 받고 압수수색당하고 국회에 출석했던 분이 같이 있었는데, 집에 갔다가는 밤새 구속될 수도 있겠다면서 호텔을 급하게 잡길래 호텔까지 내 차로 태워드렸다”고 전했다.
의료계는 성명을 통해 ‘전공의’를 콕 집어서 처단하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4일 0시 무렵 입장을 내고 “사직한 의료인은 과거의 직장과의 계약이 종료되었으므로 ‘파업 중이거나 현장을 이탈’한 것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해당 항목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도 이날 ‘윤석열은 국민에 대한 탄압을 당장 멈추고 하야하라’는 공동성명을 내고 “윤석열과 대통령실 참모진,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관련자들은 당장 자진해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의료계를 반국가세력으로 호도했다”며 “국민을 처단하겠다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건 정권이 반국가세력임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 5명도 전공의를 ‘처단’하겠다고 한 윤 대통령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판의 메시지를 던졌다.
보건의료단체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성명이 잇따랐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새벽 성명을 통해 “이번 불법적·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윤석열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 의결에 이어 헌정을 유린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지체 없이 의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도 긴급성명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부정한 권력을 폭력으로라도 지켜보려는 파렴치한 행위이며 반민중적 반민주적 정권임을 스스로 밝히는 용서할 수 없는 폭거”라면서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