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여파로 의료 개혁 논의가 차질을 빚게 됐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위원 탈퇴가 이어지고, 회의가 연기됐다. 의료 개혁은 윤 대통령의 4개 개혁 과제의 하나이다.
의개특위에 대한병원협회 추천 몫으로 참여하고 있는 신응진 순천향대 중앙의료원 특임원장은 4일 오전 이성규 대한병원협회 회장에게 의개특위 위원 사의를 표했다. 이어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도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병원협회는 이날 오후 대책회의를 열었고 5일 오전 상임이사회를 열어 최종 입장문을 내기로 했다. 병협은 의개특위에서 철수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개특위는 의료 공급자·수요자·전문가·정부위원 등 2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핵심이 의료 공급자 단체인데 병원협회·간호협회·한의사협회·약사회 등이 있다. 이 중 의사 단체로 볼 수 있는 데는 병원협회가 유일하다. 이 협회가 추천한 신응진·박진식 위원이 4일 사퇴한 것이다. 의사협회·전공의 대표는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다.
의개특위 산하에는 4개의 전문위원회가 있는데, 여기에도 병원협회 추천 위원이 10명 넘는다. 이들도 전문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신응진 위원은 4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지금과 같은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50년 의료 대계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판단해 사퇴했다"며 "정부의 새로운 리더십이 구성되면 그 때 가서 논의하는 게 맞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계엄사령부 포고문에서 의사를 처단한다고 한 데 대해 의료계가 격분하고 있다. 나도 여기에 공감한다. 이런 지도자(윤 대통령을 지칭) 아래의 의개특위에 참여하는 걸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이날 저녁 의개특위 산하 정경실 실무추진단장에게 특위 운영 중단을 요구했다.
혼란 상황이 이어지자 의개특위는 4일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던 필수의료ㆍ공정보상 전문위원회 회의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날 전문위는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개선방안에 대한 막바지 논의를 계획하고 있었다.
또 5일 오전 10시로 잡았던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는 서면 심의로 대체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전문위의 한 위원은 “고위험 필수의료과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 등을 논의해야 하는데 서면 심의로 대체해도 될지 모르겠다”며 “안건을 받아봐야겠지만 제대로 논의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의개특위는 이달 19일 공청회를 열고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선 방안, 의료사고 안전망을 포함한 의료개혁 2차 실행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이달 말 확정된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상 계엄 후폭풍으로 회의 일정이 취소되거나 미뤄지면서 의개특위의 시계도 당분간 멈출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위 위원으로 참여 중인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너무 오래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들을 풀어가는 중인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선 안된다. 정권과 관계 없이 논의는 이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계 참여 여부와 관계 없이 특위 논의에는 참여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논의가 제대로 될지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