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리저리 치이던 군대 이등병 시절, 관물대 위에 놓인 서가에서 어느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31일 참석한 철강전망세미나.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건설 철강재 수요가 올해보다 소폭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건설수주, 착공 면적 등의 건설공사 선행 지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기준 금리 인하가 몇 차례 더 단행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아직 햇병아리인 필자에겐 철강 시황 반등의 모멘텀이 보이는 듯 했다. 중국은 9월부터 경기부양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대로 중국 내수 시장이 살아나면 중국의 밀어내기 철강 수출량도 줄어들 것이고, 결국 국내 건설 시장에 국산 철강재가 더 많이 쓰일 것이다.
그런데 세미나 전망이 있은 지 5일 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지금, 중국은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보내던 철강을 포함한 물량을 또 주변국 어딘가로 보낼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조선업계와의 후판 협상도 지지부진하다. 조선업계는 최근 호황을 맞았다. 트럼프가 당선된 지 이틀 만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리 조선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상대적으로 비싼 국산 후판보다는 저렴한 중국산 후판이 더 매력적이다.
철강 전방산업인 자동차산업도 위기감이 인다. ‘카마켓돈’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중국산 자동차 업체들의 기세가 무섭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업체들의 점유율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철강업황이 좋지 않다’는 말은 이제 관용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철강업계 상황은 현재 어렵다. 대내적으로, 대외적으로 모두 그렇다. 앞으로 어떤 돌파구가 마련 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을지, 그래서 철강업계가 다시 웃을 수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관물대 위 서가 앞. 내 손에 쥐인 책은 ‘KEEP GOING 그래도 계속 가라’. 검색해보니 지금도 출판되고 있다.
10년도 더 됐고, 힘들었던 시기다 보니 내용들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KEEP GOING’이라는 말을 거듭 되내이며 버텼다. 그리고 결국 거꾸로 걸어 놔도 간다는 그 국방부 시계는 ‘정말로’ 갔다.
‘KEEP GOING. 그래도 계속 가라’. 지금 철강업 관계자 모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