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페미에요?’ 질문 받고, ‘도전 한남’ ‘여유림’ 동아리 만들었죠”

2025-02-04

시도(39)는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 2년차 선생님이다. 간디학교는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며 당당하게 나의 길을 찾아가는 작은 학교’라는 슬로건을 건 대안학교다.

‘남학생들은, 남자들은 왜 여성혐오가 담긴 욕을 할까. 교사라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알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기도, 답답하기도 했던 시도는 2023년 학교에서 남학생들의 페미니즘 동아리 ‘도전한남’을 만들었다. 6개월 후 여학생들의 페미니즘 동아리 ‘여유림’도 만들어지면서 간디학교에서는 두 동아리가 함께 토론 수업을 한다.

몇 차시의 수업보다 더 나아간 동아리 속 토론 수업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질까. 대안학교 간디학교의 활동은 많은 일반 학교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시도와 학생들을 지난해 12월 말 인터뷰했다.

올해 결혼한 시도는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혼란스러웠다. ‘남초 집단’에 속한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남성성은 왜 여성과 다를까. 대화해도 잘 통하지 않는데 굳이 이해되지 않는 대상들을 힘들게 이해하며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떨까. 그러나 시도는 파트너와 대화하고 함께 고민하고 때로 갈등하는 과정을 겪으며 깨달았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억압만 해결해주는 게 아니다. 남성의 억압도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을. 서로 다른 지점들을 좁혀가다보니 페미니즘이 남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발견한 것이다.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도 남성 청소년과 여성 청소년은 달랐다. 여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맞벌이인데도 엄마가 주로 가사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여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자신의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반면 남학생들은 페미니즘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페미니즘이 여성의 억압 뿐 아니라 남성의 억압도 자유롭게 해준다면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먼저 남학생들에게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소년들끼리 안전하게 질문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23년 6월 처음 남학생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냈고 첫해에 12명이 모였다. 지난해에는 15명이 함께 하면서 학내에서 ‘참여하고 싶은 동아리’가 됐다.

동아리 이름은 ‘도전한남’이다. 인터넷상에서 ‘한남’이 부정적인 용어로 자주 쓰였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한국 남성’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 ‘한남’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도전하자는 의미를 덧붙였다. 동아리 구성원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 1시간40분 동안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했다. 주제는 다양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뭐기에, 페미니즘의 제3의 물결은 왜 생긴 걸까, 아이돌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어떤가, 우리 연애는 평등한가, 군대와 대체복무제는 어떻게 논의를 시작해야 하나 등이었다.

2023년 2학기가 되자 여학생들의 페미니즘 동아리 ‘여유림’도 만들어졌다. 남학생들의 동아리가 생기자 여학생들도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고 싶어 했고 13명이 금방 모였다. ‘도전한남’과 ‘여유림’이 생긴 이후 학생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바다(19)는 시도의 제안으로 동아리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중학생 때 이야기를 꺼내며 동아리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중학교 때 학교에 페미니즘을 강의하는 강사가 오면 친구들 중 ‘왜 이런 걸 강제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불평하는 부류가 있었다. 한편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들도 있었다. 한바다는 “점점 양극화가 커지는 걸 느껴서 합의점을 이룰 수 없을까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동아리가 남학생들에게도 ‘안전한 공간’이 된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는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와 같은 표현처럼 평소 한국 남성으로 살면서 표현하는 게 어려웠는데 동아리 안에서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이상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생각하는 폭이 넓어졌다고 느낀다. 그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늘어난 것보다 앞으로 살면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 점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호(18)는 ‘도전한남’ 활동을 하면서 감정 표현을 잘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점이 달라졌다고 했다. 옌스 판트리흐트의 책 <남성 해방>을 읽은 것도 큰 계기였다. 2023년 출간된 <남성 해방>은 남성이 남성성이라는 오랜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른 젠더와 서로 평등한 관계를 맺으면,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남성에게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책 메시지에 충격을 받았다. 늘 페미니즘을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남성들을 옭아매는 남성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한 남성성이 제게 얼마나 있는지,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여유림’ 전 회장인 오한결(20)은 ‘도전한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간극이 있는 건 당연해요.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안(18)은 여학생들의 페미니즘 동아리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답답했을 것 같아요. 행동하는 쪽은 여성들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거든요. 남자애들과 소통하면서 페미니즘의 끝이 절망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안은 남자친구들의 변화도 느꼈다. 발제 준비를 하는 친구들의 생각이 계속 확장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동아리가 생기니 학교의 다른 시간에도 페미니즘 논의가 스며드는 느낌도 있었다. “평소에 친구 중 누군가 외모평가를 당했다거나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목격했다면 저녁에 따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눴었어요. 이제 페미니즘이 학교의 논의 주제가 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변화여요.”

지난해 6월 ‘도전한남’과 ‘여유림’은 해방주간을 함께 기획했다. 해방주간은 간디학교에서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처음 열었다. 이 주간에서 학생들은 논의 끝에 ‘외모 품평’이 왜 문제인지 함께 고민하고 신체 해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를 위해 남학생들은 치마와 브래지어를 입어봤고 여학생들은 ‘노브라’를 시도했다.

오한결은 여름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땀도 차고 답답했는데 자신만의 문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도전한남’과 ‘여유림’은 먼저 대화를 나눴다. 여학생들은 “우리는 (상의를) 벗을 수 없어”라고 했고 남학생들은 “스키니진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를 시작해보니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졌다.

한바다는 말했다. “여학생들이 ‘우리는 못 벗어’라고 할 때 ‘그럼 벗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사회가 여성의 가슴은 감춰야 할 것이라는 틀을 만들어놨는데 ‘벗고 싶으면 벗으면 되지’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딱 느꼈어요. 남성만 가지고 있는 권리일 수 있겠다는 걸요.”

지난해 12월 동아리 시간에는 ‘성평등한 연애’를 주제로 토론을 했다. 남성들 문화에서 “연애 몇 번 해봤어, 몇 번 자봤어”라며 ‘바디 카운트(body count)’를 따지는 이유, “고3 때는 연애를 하면 안 되지만 졸업 후 하루만 지나면 연애를 하는 것이 좋다”며 사회가 청소년들과 성인이 된 시점의 연애를 어떻게 다르게 대하는지 등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눠봤다.

특히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게 뜻깊었다. 한바다는 ‘돌봄’이라는 단어는 늘 일방적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동생을 돌봐달라고 할 때도, 돌봄교실이라는 단어에서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좌하는 일방적인 느낌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남성과 ‘돌봄’은 거리가 먼 단어였다.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남성이 여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했나봐요. 힘든 걸 표내거나 우울한 내색을 하면 주변에 영향을 미치니까 감정을 억누르는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동아리에서 토론을 하면서 ‘나를 돌봐달라’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 여자친구에게 대입 준비를 하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에 대해 위로해주는 여자친구의 말에서 느꼈다. “참 좋았어요. ‘수고했다, 잘 될 거다’라는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이 얼마나 따뜻한 건지를요.”

한바다는 여전히 ‘페미’가 욕으로 쓰이는 남성 중심 커뮤니티를 지켜보다 보면 괴리감을 느낀다. 그는 커뮤니티에 나타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불확실하고 기울어진 정보’ 때문이 아닐까 궁금하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만을 접하면 생각이 굳어져 버리는 것 아닐까요. 반대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교육을 받는다면 편향적인 생각이 아니라 평지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호는 올해 동아리에서 여성혐오라는 주제에 대해서 남성의 관점으로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대체로 차별과 혐오를 하는 주체는 남성이니 남성으로서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해보고 싶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별과 혐오를 주로 하는 것은 남성이니 남성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남성성 때문에 배우지 못한 세세한 감각들을 기르고 싶다.

시도는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돌봄은 ‘서로돌봄’이고 돌봄을 허락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끌어내는 걸 보며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남자 청소년들은 사회의 어른들의 모습을 스며들듯 배운다. 무엇으로부터 억압되어있는지도 모르다가 동아리 토론 시간에 작은 지점들에서부터 깨어질 때 너무 짜릿했다는 것이다.

시도는 어릴 때부터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현장에서 체감한다. 그는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누구나 자기 안의 ‘이대남’이 있으니 그걸 깨닫게 도와주면 되는데 그런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오한결은 “청소년기는 뭐든 잘 흡수하는 시기니까 페미니즘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시도는 동시에 자신도 학생들에게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제가 10년에 걸쳐 배운 걸 학생들은 1~2년 안에 배워서 같이 논의하자고 해요. 매우 빠른 속도로 학습하는 거죠. 이런 수업이 많아진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 임아영 젠더데스크 겸 플랫 팀장 layknt@khan.kr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시도 선생님의 성평등 교육 이야기를 4회차의 ‘입주자 프로젝트’ 연재로 싣는다. 입주자 프로젝트는 플랫 독자(입주자)들과 플랫팀 기자들이 만나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① 선생님이 말하는 청소년에게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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