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의 무지(無智) 무득(無得)]피일시 차일시(彼一時 此一時)

2025-12-04

총체적 난국이다. 관세, 환율이 그렇고, 기업과 대학이 그러하니 가계(家計)와 개인이 모두 힘들어 하고 있다. 그런데 “내 책임이오”하고 나서는 이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온 누리에 맹세하듯 소리쳐 온 수 많은 약속들은 오히려 자신이 뭉개버리면서도 그저 입틀막이다. “혁신하겠다”는 말만 망가진 녹음기처럼 되새김질하다가도, 가뭄에 콩 나듯 드러나는 과거 성과에 대해서는 모든 성취를 자기가 이룬 것처럼 자화자찬(自畵自讚)이 장황하다. 지키지도 않을 말로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하며 오로지 세상을 어지럽힌다. '피일시 차일시(彼一時 此一時)' '그 때는 그러더니, 지금은 이러더라'는 의미로, 중심 없이 오락가락 하는 행태를 비아냥대는 말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맹자(孟子)가 누워있다 벌떡 일어날 일이다. 자신의 일관되지 못한 모습에 대해 제자 충우(充虞)가 의아하게 여기자, 맹자가 '피일시 차일시(彼一時 此一時)'라고 대답했는데, 이 말은 본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내리면서 한 성어(成語)다. 영악한 처세술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 완결성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가르침을 담고 있다.

주역(周易)에는 통변(通變)이라 하여, 자연의 원리, 즉 도(道)가 만들어주는 모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황 속에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행동 방침을 찾아내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가르치며, 구변(求變)이라 하여 한 줄기의 변화가 다하면(窮) 새로운 변화를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궁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하고(變則通), 통하면 오래간다(通則久)' 세상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넘어, 적절한 때에 능동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화와 적응이야말로 생명력 유지의 근본임을 설파한다.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에 나오는 시중(時中)이라는 말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8장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는 가장 유연하고 약해 보이는 물(水)을 최고의 덕으로 제시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에 비유한다.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 之所惡 故幾於道)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6장 곡신불사(谷神不死)에서, 곡신(谷神)이란 문자 그대로 '계곡의 신'이지만, 철학적으로는 도가 가진 공허함, 겸허함, 포용력을 상징한다. 계곡(谷)은 주변 산들보다 낮고 비어 있는 곳이다. 이 비어 있음(虛) 때문에 세상의 모든 물(水)을 받아들인다. 물을 담고 흘려보내는 역할을 계속하기 때문에 '신(神)'적인 작용(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계곡과 같이 스스로 비어(虛) 있어야 자연의 이치, 도(道)가 가진 겸허함, 포용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오래된 것을 내보내는 생명의 순환 작용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고정된 관념과 더불어 자신의 생명인 양 손아귀에 꼬옥 쥐고 있는 강한 힘(權力)에 의존하지 않고, 상황에 따르는 유연성에 기대어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현빈(玄牝)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만물은 고정된 실체(自性)가 없으므로 무아(無我)와 공(空)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물처럼 유연함으로써 변화하는 세상에 적절히 순응하는 지혜를 얻으려는 수행과 정진을 장조한다. 물처럼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慈),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悲) 마음을 가지면서 중생(衆生)을 이롭게 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자고 나면 인공지능(AI)은 새로운 기술을 내놓고, 정치판은 온 나라를 혼탁하게 하니, 도대체(都大體) 한 치 앞이 가늠이 안 된다. 진리를 깨닫고 자신을 돌보는 지혜를 바탕으로 한 피일시 차일시(彼一時 此一時)가 필요한 때다.

이강우 동국대 컴퓨터AI학부 교수 klee@dongguk.edu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