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선덜랜드의 경기 직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해당 경기 주심 앨런 와일리의 체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EPL 수준 경기를 소화할 만큼 체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경기의 속도는 높은 체력을 요구했으며, 이는 우리 리그 전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해외 심판들은 매우 건강하고 강인하다. 그런데 그는 선수에게 경고를 주는 데 30초나 걸렸다.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이후 한 언론이 운동량을 분석한 데이터를 근거로 반박기사를 썼다. 와일리는 당시 경기에서 맨유 선수 4명과 선덜랜드 선수 3명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보다 더 많은 거리를 뛴 것으로 측정됐다. 반칙 지점으로부터 평균 17~18m 이내(FIFA 권고수준)에서 판정을 내렸다. 이는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심판 경기 이해도와 체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보도였다. 퍼거슨 감독은 끝내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고 공식 사과했다. 데이터와 미디어의 힘이 결합해 개인의 명예를 회복시킨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축구는 타 종목에 비해 기술 도입에 비교적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 이는 축구가 단순한 판정보다 ‘판단’의 비중이 큰 종목이며, 인간의 직관과 해석이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기술이 이러한 인간적 요소(human factor)를 제거하고 경기 흐름을 방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돼온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도 2014 브라질 월드컵의 골라인 판독 기술(GLT), 2018 러시아 월드컵의 비디오 판독(VAR), 2022 카타르 월드컵의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시스템(SAOT) 도입을 계기로 변화하고 있다. SAOT에서 ‘반자동(Semi-Automated)’이라는 표현을 주목해봐야한다. 왜 자동이라고 하지 않고 반자동이라고 했을까.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프사이드는 단순히 위치 정보만으로 판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고의적인 플레인지, 굴절인지, 상대 선수에 대한 방해인지 등은 여전히 인간 심판의 해석이 필요한 영역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머지않아 이러한 해석의 권한마저 AI에 일부 넘어갈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스포츠 선수, 지도자, 팬, 그리고 언론은 과연 모든 판정을 AI가 내리는 세상을 원할까. AI 심판이 관장하는 스포츠가 여전히 매력적인가. AI의 판정을 팬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오류 발생 시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과연 무결점의 스포츠가 진정한 재미를 줄 수 있을까. 판정 논란을 취재하고 비판해온 언론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스포츠저널리즘의 비판적 기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스포츠의 핵심 가치가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면, AI가 주도하는 스포츠는 결국 각본 없는 드라마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인간의 감정과 공동체의 서사가 축적된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스포츠는 단순한 승패를 가르는 도구가 아니다. 특히 축구처럼 해석의 여지가 필연적인 종목에서는, AI는 보조적 도구(tool)로 기능해야 하며, 인간 심판의 역할을 대체하는 존재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AI 기술은 계속 진보하고 있고, 스포츠 현장에 대한 외부의 기술 도입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기술과 인간, 감성과 데이터가 공존하는 스포츠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가. 완벽한 정확도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가 지닌 ‘불완전함의 매력’을 유지하는 것인지 모른다.
<홍은아 이화여자대학교 체육과학부 교수, FIFA·AFC 심판강사>
<스포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