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자공유공간 ‘planC’는 전북을 대표하는 대안공간이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소유주가 아닌 사용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공유공간이다. 공간을 사용하는 동안 작가는 온전히 그 공간의 주인공이 된다. 2017년 6월 첫 전시를 시작했고, 12월이면 문을 닫는다. 8년 6개월. planC는 무엇을 남겼을까.
폐관을 한달 앞두고 planC의 물품들이 도난을 당했다. 거울, 붙박이장 문, 바닥, 위스키잔이 12개 든 상자, 창문, 슬레이트, 조명, 액자, 벽의 일부, 커튼용 천, A자형 옥외입간판, 머리핀, 샹들리에, 오전의 상쾌한 공기, 그날의 햇살 등등.
100여년 세월이 깃든 공간은 낡을 만큼 낡았다. 가져간 물품들 역시 그리 가치있어 보이진 않는다. 상쾌한 공기나 그날의 햇살은 훔쳐간들 흔적도 남지 않는다. 도둑은 모두 37명으로 밝혀졌고, 이들은 딱 하나씩만 가져갔다. 가져간 물건은 각자 취향에 맞게 변형됐고, 며칠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용자공유공간 planC(완산구 은행로 30)의 종료전 2부 ‘모두가 아는 도둑질-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전시가 내달 5일까지 열린다. 도둑질은 기획자에 의해 허락됐고, 물건을 가져간 건 작가들이었으며, 이들은 각자의 예술적 영감을 그곳에 더했다.
박마리아 작가는 1시간30분 정도 머물며 무엇을 훔쳐갈지 고민했다고 한다. “훔쳐갈 물건을 선별하는 것이 아닌 애정하는 이곳과 작별인사를 나눈 시간”이라고 말한다. 위스키잔 12개가 들어있는 박스를 가져간 뒤 깔끔하게 개별 포장해 ‘택배’라 쓰인 딱지를 붙였다. 누군가는 포장된 위스키잔을 가져갈 것이고, 그들은 이 잔을 쓸 때마다 이곳을 함께 기억하는 공범이 될 것이다.
전문작가는 아니지만 캐시트레이(CASHTRAY)라는 이름으로 디제잉 활동을 하는 이선희씨는 planC의 A자형 옥외입간판을 훔쳤다. 친구들 중 화가가 많고, 자신 또한 planC에서 디제잉을 한 적이 있다보니 이곳이 종료된다는 아쉬움에 작가로 참여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작품 제목은 ‘자기소개’. 앞면에는 자신의 일상이나 최근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깨알같은 글씨로 채웠다. 뒷면에는 자신의 다양한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일종의 프로필인 셈인데, planC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도 의미있는 공간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시 기획을 주도한 이산 작가는 “독립큐레이터그룹 크랩(CLab)과 함께 준비한 이번 전시는 planC의 ‘종료’를 소멸이 아닌 시작의 언어로 바꾸고자 한 것”이라며 “공간의 조각을 훔쳐 재료로 삼는 과정 자체가 동시대 전시의 생산방식을 다시 묻는 시도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12월 3일 오후 4시에는 부대행사 포럼 ‘불완전한 이상이 실현될 때 어떤 공동체가 형성되는가?’가 planC에서 열린다. 사용자공유공간 planC 시작자 이산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승준 이사장, 연결기획자 톨, 예술가·예술사회학연구자 김신윤주가 발제를 진행한다. 포럼 종료 후에는 참여 작가 김이중, 유승협의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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