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2025-10-23

스페인의 교육운동가 프란시스코 페레(1859~1909)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격언을 남겼다. 그는 당시 서구 사회에 만연한 권위적·폭력적 교육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꽃은 통상적으로 사랑과 순수, 평화 등을 상징한다. 회초리나 몽둥이 대신 꽃을 내세운 건 가장 순하고 가벼운 방식이라 할지라도 체벌을 포함해 권위적인 방식의 훈육이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페레가 교육 개혁을 부르짖을 당시 스페인은 사회적 암흑기였다. 가톨릭 교회와 왕정이 결탁해 국민을 짓눌렀다. 기독교 부패의 상징이자, 종교개혁의 도화선 역할을 한 면죄부가 여전히 팔리는 시절이기도 했다. 당시의 교육은 성직자 또는 왕에게 절대복종하는 피동적 인간을 양산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교육 개혁에 뜻을 품은 페레는 1901년 바르셀로나에 근대학교(La Escuela Moderna)를 세웠다. 종교 대신 과학 중심으로 가르치고, 체벌과 강요를 없애고, 평등과 비폭력의 가치를 강조했다. 남녀공학 시스템을 도입했고, 노동자와 빈민층 자녀들에게도 동등한 교육 기회를 줬다. 암기 대신 실험과 토론을 장려했다.

이러한 노력은 당연히 당시 지배층의 노여움을 샀다. 그를 무신론자이자 사회 전복 세력으로 규정한 기득권자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1909년 당시 스페인 정부가 군인 징집을 확대하자 이에 반발한 바르셀로나 시민 일부가 폭동을 일으켰는데, 페레를 주동자로 몰아 체포한 뒤 총살했다. 억울하게 숨을 거둔 페레는 사후 ‘세계 최초의 교육 순교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교육 철학은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 들불 번지듯 퍼져나갔고, 이후 근·현대 교육 시스템의 뼈대가 됐다.

페레가 세상을 떠난 지 116년이 흐른 지난 23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계 폭력 근절을 위한 처벌 강화 조치에 따라 선수를 폭행한 중학교 씨름부 감독에 대해 체육지도 자자격을 박탈했다”고 발표했다. 폭력 및 성폭력 관련 혐의에 대해 이른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체육계에 적용한 첫 번째 사례다. 해당 지도자는 피해 선수가 훈련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무려 삽으로 때렸다.

이번 결정에 대해 체육인들은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해당 규정이 악용돼 지도자들의 입지를 흔들 가능성을 우려하는 모양새다. 그들의 걱정에 십분 공감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조치가 ‘어떤 폭력도 안 된다’는 보편 가치가 체육계에도 온전히 적용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초 단위, 분 단위로 많은 게 달라지는 현대사회에서 체육계만 면죄부를 팔던 시절의 구습을 버리지 못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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