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국문화사회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있었다. 기획 세션 ‘굴대 시대의 사회학’에서 사회학자 박영신이 특별강연을 했다. 굴대 시대의 핵심은 초월이다. “무엇보다 초월은 자기 초월을 전제한다. 자기 본위의 자기중심성에 갇힌 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초월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물음을 던지며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 이렇게 초월이 중요할까? “어느 국가가 특정 국가의 예속국이 되지 않고, 서로 기대고 나누며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범세계의 이웃다움을 실행하고 이웃 됨을 증명하는 시대의 요청 앞에 우리 모두가 서 있다. 여러 인종, 여러 종교가 뒤섞여 살게 된 오늘날에 와서, 이처럼 자기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자기 초월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가치이고 놓쳐서는 안 될 삶의 길잡이이다.”
굴대 시대를 처음 말한 이는 야스퍼스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문명의 비극을 깊은 수준에서 새김질해 인류의 역사를 넓고 길게 살펴보고자 했다. 하지만 초월의 관점에서 보면 굴대 시대라는 새로운 용어가 지닌 원래 뜻은 야스퍼스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그 핵심은 인간은 하나의 주어진 단일한 세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실증의 세계’와 ‘초월적 이상의 세계’ 사이에서 서사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망각하고 주어진 실증의 세계에 붙박여 각자 국민국가 수준에서 이득에 힘을 쏟으면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참화가 지구를 휩쓴다.
현재 우리는 국민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진 민주주의가 한계에 처했음을 보고 있다. 선과 정의가 국경을 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전 세계가 국민국가 단위로 철저하게 찢긴 채 모두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주권을 가진 국민국가가 무한경쟁 중 휘두르는 폭력은 절대로 오류일 수가 없다. 이러한 정당화는 모두 성장 담론에서 나온다. 만물을 유용한 사물로 뒤바꾸자! 이러한 사물화의 꿈을 극단까지 몰고 가면 사물의 지배에서 인간이 풀려나 자유를 얻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유용한 세계를 만들면 만들수록 인간은 덜 유용해지는 역설이 나타난다. 인간 없이도 더 유용한 기계와 기술을 통해 이전보다 더 유용한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인간 노동을 자동화 시스템과 인공지능이 재빠르게 대체해간다. 이 과정에서 잉여 인간이 쏟아져 나온다. 다시 생산 현장에 투입해 유용한 노동으로 활용하면 되지만, 성장이 거의 멈춰 있기에 잉여 인간을 유용하게 써먹을 길이 마땅찮다. 그렇다고 무용한 쓰레기처럼 폐기처분하기도 쉽지 않다. 대안은 사물을 존재로 되돌리는 ‘무조건적 소모’다. 그럴 능력이 없는 국민국가 체제는 전쟁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굴대 시대의 종교는 보편적인 우주론적 사랑을 내세웠음에도 인간 사회에 팽배한 제도화된 폭력을 끝장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학의 창건자들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초월적 상징체계를 만들어냈다. 이는 국민국가 차원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었지만, 사물화의 꿈이 거덜 난 지금 그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제 또 다른 굴대 시대를 그려낼 수 있는 새로운 상징체계를 창출해야 한다. 사회학은 ‘사회 자체’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유일한 학문이다. 종교와 국민국가가 만든 초월은 한계에 처했다. ‘교주’와 ‘독재자’로 귀결됐다. 이제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언어를 창출해 세속적 질서에 긴장을 불어넣어야 한다. 둘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은 사회와 문명 간의 관계에 새로움을 가져온다. 불확실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려 있다. “삶은 곧 역사이고” “이 역사는 ‘자기 형상화’이고 ‘자기 이해’이다.” 박영신의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