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팔란티어 온톨로지, 중간계 신화의 귀환

2025-10-23

팔란티르의 구슬은 세상 모든 곳을 비추는 '투명한 눈'이었다. 그러나 그 눈이 보여주는 세상은 항상 보는 자의 마음에 따라 달랐다. 사우론은 구슬의 일부만 보여줘 사람들을 속였다. 보는 자는 그것이 진실이라 믿었지만, 그건 사실의 일부에 불과했다. 완전한 시야는 오히려 해석의 함정이었다. '진실'은 '해석'의 맥락 속에서 재구성된다.

'기호'와 '패턴', 인공지능(AI)의 역사는 두 세계 간 충돌의 역사다. 기호주의(Symbolic AI) 진영은 세상의 질서와 법칙을 기호와 언어로 표상할 수 있음을 믿었다. “지능은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식표현(Knowledge Representation)만으로 세상을 다 비춰낼 수 없었다. 감정, 우연, 관계의 미묘한 흐름들이 끊임없이 기호와 지식의 경계를 넘어섰다. 그 틈을 연결주의(Connectionist AI) 진영이 파고들었다. 언어 대신 숫자로, 논리 대신 패턴으로, 연결주의는 감지된 데이터 속 리듬을 통해 학습하고, 경험적으로 적응하는 기계였다. 하지만 데이터와 패턴의 연결로는 세상을 '느낄' 수는 있었어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풍부한 그리고 무의미한 패턴들.

'기호'와 '패턴', 그러니까 사고와 감각, 정신계와 물리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이데아와 현상계라는 끊임없이 대립하는 두 세계는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두 세계는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지 못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중간계(Middle-earth)는 물질이면서 정신이고, 현실이면서 동시에 상징인 세계다. 중간계의 인간은 '신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 사이에서 방황하며, 운명과 자유, 질서와 혼돈의 긴장을 감당해야 하는 곤혹스런 존재다. 기호주의는 학습하지 못했고, 연결주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의 지성을 온전히 모사하기 위해서는 이 두 질서를 통합하는 '중간계', 즉 '의미'와 '계산', '논리'와 '데이터'가 한데 섞여 공존하는, 살아 숨쉬는 중간계가 필요한 것이다.

온톨로지(Ontology)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존재론' 또는 '본태론'을 뜻하는 철학 용어이지만, 컴퓨팅에서는 한 분야의 개념과 개념의 속성과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명시적 언어로 정의한 체계적 지식표현을 말한다. 물리계를 관찰 또는 계측한 결과물인 '데이터'가 인공신경망 연결주의의 일극이라면, 정신계의 개념과 그 체계인 온톨로지는 기호주의의 대극이다. 인공신경망은 '데이터'만으로 패턴을 학습하지만 해석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기호주의 'IF THEN' 규칙은 설명하고 해석하지만 추론과 학습은 제한적이다.

팔란티어는 본디 기호주의에서 유래한 온톨로지를, '기호'와 '연결'의 두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계'에 건설했다. 전통적 온톨로지가 세상을 정태적 분류체계로 비추려 했다면, 팔란티어 온톨로지는 세상을 동적인 관념, 개념, 의미의 생태계로 비추려 한다. 기존의 전통적 온톨로지는 의미와 단절된 데이터를 객체(Entities)와 관계(Relations)의 맥락을 부여하는 '메타데이터'로 보완하고, 나아가 메타데이터들 간의 맥락을 부여하는 '메타데이터 온톨로지' 계층을 추가해, 세상 만물과 그 존재의 관계를 정의하는 '정태적 온톨로지'를 구축해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소멸하는 세상 만물의 변화(ontological decent)를 데이터로 감지해 비춰주는 팔란티르 구슬, 구슬을 들여다보는 자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관념은 보는 자의 마음속 개념으로 연결되고 의미로 살아난다. 팔란티어 온톨로지는 기호적 의미론과 패턴적 감응구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의미-데이터 망이다. '관계의 작동'과 '의미의 실행'의 동적 온톨로지를 통해 중간계에서는 데이터가 변하면 개념과 연결도 변화한다. 데이터와 온톨로지는 한 몸이 되어 더이상 따로따로 관리되지 않는다. 기호와 패턴은 손잡고, 신화와 기계는 오랜 충돌을 멈추고 화해한다. 중간계 신화의 귀환으로 인간의 사유와 행동은 데이터와 온톨로지에 연결된다. 이제 중간계의 동적 온톨로지는 '지식의 사전'을 넘어 '지식 작동의 운영체계'가 되었다. 신화는 세상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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