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먹는 존재들
조이 슐랭거 지음 | 정지인 옮김 생각의힘 | 464쪽 | 2만3800원

환경 전문기자로 일하던 미국 저널리스트 조이 슐랭거는 반복되는 기후위기 기사에 지쳐 “경이롭고 생동하는 느낌이 드는 뭔가”를 찾아나섰다. 식물이 위로가 됐다. 점심시간마다 식물 관련 논문을 읽던 그는 최근 식물학계에서 ‘식물 지능’을 둘러싼 혁명적 발견과 격렬한 논쟁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난해하고 모호한 학문의 영역에만 갇혀 있기에는 너무 좋은 이야깃감”이라고 확신한 그는 2019년 다니던 언론사에 사표까지 내고 이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섭렵하는 데 매달린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이번에 한국어판이 나온 <빛을 먹는 존재들>은 그 결실이다.
식물의 지능은 대단히 예민한 주제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식물 지능을 거론하는 학자들은 보수적인 과학계에서 매장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러나 호기심 강하고 끈질긴 과학자들의 연구가 이어지면서 ‘식물 지능’의 존재를 부인해온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식물은 입이 없지만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미국 워싱턴대에 딸린 숲은 1970년대 후반 몇년간 천막벌레나방 애벌레들의 공격으로 파괴됐는데, 3년이 지난 시점부터 상황이 반전돼 애벌레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대학 동물학자 데이비드 로즈는 공격을 받은 나무들이 아직 공격받지 않은 나무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를 받은 나무들이 잎의 화학적 성분을 변화시켜 일종의 ‘항체’를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식물들이 자신과 가까운 친족과 의사소통을 할 때는 그들끼리만 해석할 수 있는 화학적 신호를 사용하지만, 보다 넓은 지역의 다른 개체들과 소통할 때는 더 쉽게 해독 가능한 신호를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학계 논쟁거리인 식물 지능
혁명적 발견들 제시하며 질문
친족과 화학적 신호로 소통
소리 감지해 방어물질 생산
사회적 삶 보여주는 증거도
식물의 의사소통은 종의 경계도 넘어선다. 2018년 생태학자 콘수엘로 데 모라에스는 온실에서 기르던 흑겨자의 잎에서 뒤영벌의 입이 낸 자국을 발견했다. 뒤영벌이 꿀을 섭취할 수 있는 흑겨자의 꽃이 필 때까지 아직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뒤영벌들이 얼마 안 가 굶어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흥미롭게도 뒤영벌이 잎을 깨문 지 며칠 후 꽃이 피었다. 흑겨자가 뒤영벌이 보낸 신호를 감지하고 반응한 것이다.
식물을 쓰다듬으면 식물이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의식적으로 자각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외부의 접촉에 식물이 반응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험에 따르면 식물을 자꾸 건드리면 해당 식물의 에너지가 성장보다 자기보호에 쏠리면서 키는 작아지고 둘레는 두꺼워진다. 식물생물학계의 실험용 쥐 같은 존재인 애기장대를 부드러운 붓으로 건드리면, 30분 뒤 전체 유전자의 10%가 변화한다. 여러 번 건드리면 키가 커지는 속도가 30%가량 줄어든다.
이제 막 태동 중인 식물음향학 분야 연구자들에 따르면, 식물은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애기장대는 애벌레가 잎을 씹을 때 나는 소리(진동)를 감지해 방어물질을 생산한다. 애기장대에 난 미세한 털이 소리 주파수를 감지하는 안테나 구실을 한다. 201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자들은 해변달맞이꽃에 꿀벌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려주자 3분 만에 꽃꿀의 당도가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완두콩은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뿌리를 뻗는다.
다른 개체와 의사소통하고, 접촉에 반응하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식물에게 과거의 경험을 기억할 능력도 있지 않을까.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는 식물인 나사 포이소니아나(Nasa poissoniana)는 평상시 꿀벌이 날아오는 시간 간격에 맞춰 꽃가루가 묻어 있는 수술을 들어올리는데, 연구자들이 그 간격을 조정하자 그다음 날 바로 수술을 들어올리는 타이밍을 바꿨다.
베를린 식물원의 틸로 헤닝 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같은 식물의 행동 패턴은 그들에게 지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물은 외부 세계에서 정보를 취하잖아요. 그 정보를 처리하고요. 결정을 내리죠. 그리고 그 결정을 수행해요. 식물은 모든 걸 계산에 넣어 고려하고, 그 모든 정보를 반응으로 탈바꿈시켜요. 그리고 나한테는 이게 바로 지능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예요. 내 말은 그건 단순히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 아니라는 거예요.”
식물의 ‘사회적 삶’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 식물은 자신과 자신이 아닌 존재, 자신과 친족 관계인 존재를 구별한다. 캐나다의 식물진화생태학자 수전 더들리는 갯냉이가 자신과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식물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뿌리를 공격적으로 내리는 반면, 가족 관계인 개체들과 함께 자랄 때는 뿌리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7년 한 아르헨티나 연구자에 따르면, 친족 관계인 해바라기들을 촘촘하게 심었더니 서로가 서로에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도록 줄기의 방향을 조절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바라기유 생산량이 47% 증가했다. 식물이 벌이나 개미처럼 소속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인 사회적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식물 지능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다. ‘식물에 기억 능력이 있다면 뇌에 해당하는 기관은 어디인가’처럼 규명되지 않은 영역도 많다. 다만 저자는 지금까지의 발견만으로도 인간이 식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동물을 의식 있는 존재가 아닌 단순 ‘기계’로만 봤던 관점이 낡은 사고방식이 되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식물의 본성에 관한 이 새로운 정보들에 비춰볼 때, 식물이 어떤 존재인가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믿음을 고집스레 고수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식물을 있는 그대로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로 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