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배심제 도입해 사법개혁 이뤄야

2025-10-22

힘없는 국민들은 물론 국회의원도 피해를 입게 되면 최후의 인권보장기구인 법원을 찾는다. 사법부가 존경받는 나라가 선진국인데 우리는 선진국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2015년 OECD 34개 회원국 중 사법 신뢰도 33위로 최하위 평가되고 일반 국민의 24.3%가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고 응답하였다. 지난달 여론조사에 의하면 10점 만점에 검찰 3.06점, 감사원 4.08점, 대법원 4.11점, 국회 4.19점, 국가정보원 4.23점, 경찰 4.44점으로 국회보다 사법부 신뢰도가 낮게 조사되었다. 일부 법관들이 뇌물수수·성매매·음주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고, 룸살롱 접대, 근무시간 음주 소동, 사법 거래 의혹이 보도되면서 사법 신뢰가 더 떨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대법원 국정감사장에 대법원장을 출석시켜 내내 자리를 지키게 하고, 국회의원들이 대법관실을 현장검증하는 미증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3권분립 침해”를 우려하고, 법관들은 “사법부 치욕의 날”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사법부 신뢰도 갈수록 떨어져

국감에서 대법원장까지 곤경

국민 합의 판결이 설득력 높아

형사배심제 도입 성과도 좋아

독일은 판결문 첫머리에 “국민의 이름으로”라고 쓰고 판결주문과 이유를 선고한다. 이는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원칙에 따른 것이다. 독일 법관은 국민들 위에서 군림하고 재판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분쟁을 조정하는 봉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영미권 국가는 배심제를 채택하여 국민이 직접 재판한다. 법관은 소송절차에서 사회를 보고, 배심원들이 재판의 승패·유무죄를 결정하면 그에 구속되어 판결을 선고하는 데 그친다. 국민이 주체로 참여하는 배심제에서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폴 뉴먼이 변호사로 주연한 미국영화 ‘평결’은 배심제도가 존재하여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금식 시간 9시간을 준수하지 않은 채 식사 1시간도 되지 않은 산모에게 마취를 강행하다가 식도 역류로 식물인간에 이른 의료사고를 다루었다. 대형로펌을 선임한 병원 측이 식사시간을 조작하여 마취 과실을 숨겼고, 재판장은 이를 입증하려는 환자 측의 증거신청을 일방적으로 기각하고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하였으나 이를 지켜본 배심원들이 일반인의 상식에 따라 의료과실을 인정하고, 나아가 환자 측의 청구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금을 평결하였다. 전문의로 구성된 상임전문심리위원들이 의료소송에 직접 관여하고, 반면 일반인의 법감정은 반영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제소되었다면 승소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고, 인터넷과 인공지능(AI) 보편화로 이제 법률지식은 더 이상 법관의 전유물이 아니다. 법률 AI는 법관보다 더 많은 법률과 판례를 알고 있고, 사건기록을 입력하면 판단도 해준다. 그럼에도 법관으로부터 재판을 받는 이유는 판결 결과를 믿고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관은 법을 대전제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인류의 오래된 절차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재판한다. 반드시 자연과학적 입증되지 않더라도 역사적 경험과 사회상규로 평가하여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판과정과 절차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어 더 늦기 전에 불신을 차단해야 한다. 법관들이 국민들로부터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신속하게 재판한다는 신뢰를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 차선책으로 재판절차에 국민을 참여시키는 민사배심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가 되었다. 배심제는 국민에 의한 사법권력 통제, 민주적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판결에 보편적 법인식 반영 등 재판의 신뢰를 높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법원도 민사재판에서 일반 국민들이 재판 공정성에 상당히 우려한다는 여론을 인정하고 2019년 사법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주권주의 실현,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 사법절차에 대한 투명성 증진을 통한 사법 신뢰 제고” 등을 목적으로 국민참여재판제도 도입을 검토하였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로 형사배심제를 도입한 후 2022년까지 무죄를 선고받은 비율은 12.8%로서 같은 기간 일반형사사건의 무죄율 4.86%에 비해 약 2.6배 높은 경험을 하였다. 민사재판에서도 직업 법관들의 다양한 개인적 이념, 성격, 지식 격차에 따른 예측불가능한 판단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불신을 줄이고, 배심원들과 함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적 소송절차가 진행되면, 달리 판결을 믿어달라고 호소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선발된 법관 개인의 판단 못지 않게 평범한 다수의 합의가 더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국회와 대법원은 민사배심제를 도입해서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시키는 사법개혁에 나서길 바란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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