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여부 등 총 8개 항목으로 구성된 국무·차관회의 안건 사전검토 강화 가이드라인을 지난 6월 말 각 부처에 하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주로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에만 그쳤던 이전 정부의 국무회의가 반복되지 않도록 안건 상정부터 기준을 강화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생중계됐던 국무회의 당시 국무위원들이 산업재해 관련 정책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이를 평가하는 등 토론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도 가이드라인이 작동된 사례라는 분석이다.

4일 각 부처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지난 6월 말 각 부처에 ‘국무·차관회의의 안건의 사전검토를 강화하고자 가이드라인을 안내한다’고 공지했다. 안건 사전검토 강화를 위한 기준은 총 8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우선 ‘새 정부 국정철학이 및 주요 정책방향,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제시됐다. 이어 현장의 목소리와 괴리된 안건을 배제하기 위해 ‘정책 공급자 관점이 아닌 수요자(국민)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여부’, ‘현장 중심의 정책 수용성이 확보됐는지 여부’가 포함됐다. 또 ‘국민 안전 등 기본원칙을 철저히 준수했는지 여부’가 제시됐고, ‘관련 법령과의 충돌 및 관계부처 간 이견 여부’, ‘국민,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폭넓게 수렴되고, 이에 대한 설명 및 설득 과정이 충분히 이뤄졌는지 여부’와 같이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띄었다. 국무조정실은 이와 함께 ‘특정 이해관계자나 집단의 이익에 편중되지 않았는지 여부’, ‘개정시, 예상 문제점이 충분히 고려되고, 대응방안이 마련됐는지 여부’를 각 부처가 안건 상정 전 확인해야 할 기준으로 거론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는 각종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조문 하나에 일선 지자체나 이해관계자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부분을 우려하며 안건의 철저한 검토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차관회의 안건 상정 기준이 가이드라인 형태로 각 부처에 문서로 하달된 건 이전 정부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윤석열정부 국무회의에선 주요 국가 정책에 대한 논의보다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에 치중된 경우가 많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윤석열정부 국무회의 평균 회의 시간은 40분에 그쳤다. 차관회의 역시 평균 회의 시간은 18분에 머물렀다. 국무회의에 제출된 의안은 긴급한 의안을 제외하고는 차관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차관회의부터 안건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셈이다.
반면 이재명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에서 강조한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심도 있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가 대표적이다. 산재예방 대책을 안건으로 올려 진행된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하도급 구조’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이후 ‘중대사고가 발생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 불이익을 주도록 한다’(김병환 금융위원장)거나 ‘산재 전담 검사 지정’(정성호 법무부장관) 등 구체적인 대책이 논의됐다. 정부 한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국무회의가 실질적으로 운영돼 내실 있는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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