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당신의 그리운 시절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얼른 한 대목 당당하게 꺼내 놓으려 했지만, 곰곰이 더듬어도 뒤져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러다 겨우 찾아낸 것이 고작 하루,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입니다. 개운히 눈을 뜨고, 하숙방 옥상에서 담배를 피워 물자, 바람에선 바삭 마른 빨래 내음이 나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습니다.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이 없고, 근심도 걱정도 없으니, 속 끓일 터럭 하나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하숙집 아주머니가 외판원에게 속아 들여놓은 시드니 셸던 전집을 읽다, 선선한 바람에 기분 좋은 낮잠을 잤습니다. 부족한 것도 필요한 것도 없는 하루였습니다. 애써 그날을 기억해 낸 후로 지금껏, 저는 때때로 눈을 감고 그 여름의 하늘을 떠올립니다. 잘 마른 수건의 햇볕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12월3일 밤, 계엄군들에게서는 새 아이폰 냄새가 났습니다. 전화기란 물건이 할부만 끝났다 하면 귀신같이 고장이 나는 탓에 2~3년에 한 번은 새 포장을 뜯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종이상자에서 새 전화기를 꺼낼 때마다 계엄군 냄새가 나고 비상계엄이 떠오르게 생겼습니다. 결코 그리울 리 없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밤입니다. 불안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무 걱정 없던 하루를 그리워하며 사는 저 같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그날 밤의 분탕질은 우리의 친구와 이웃들을 해하려 한 것도 모자라 누군가에게 그리운 날들이 될 수도 있었던 시간, 그 애태울 기회마저 앗아갔습니다. 미안하게도 청년세대의 집회 참여가 늘었습니다. 시위의 양상도 많이 변했습니다. 촛불 대신 응원봉들이 빛을 발하고, 민중가요 대신 K팝이 울려 퍼집니다. 저 같은 아저씨는 아는 노래가 없어 쭈뼛하고, 박자를 놓친 오른손 주먹이 송구스럽습니다. 젊은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 꾸짖던 기성세대가 연일 청년들을 칭찬합니다. 고맙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물색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응원봉의 의미를 두고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밝은 빛을 가지고 나왔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볼 때 제 가슴도 뭉클하지만, 감히 칭찬하고 감히 고마워할 염치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멋진 청년세대를 응원하고 싶지만, 차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청년세대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반성해야 합니다. 그들에게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빼앗은 이들은 비상계엄을 일으킨 벼슬아치들이 아니라 못난 우리 세대인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청년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나라의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승리로 기억되는 겨울이라 한들, 훗날 누가 감히 그들에게 지금을 그리워하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리운 날로 꼽았던 그날 하루의 평온은 1980년 5월과 1987년 6월의 청년들, 그 선배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거저 물려받은 일상 속에서 저 하나 배불리 먹고 금발미녀 나오는 추리소설 따위나 읽다 잠든 탓에, 지금의 청년세대는 엄동설한 한복판에 거리로 나서야 합니다. 그리울 하루를 공짜로 누린 탓에 그 누구도 그리울 리 없는 하루를 후배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낯짝이 있으니 앞으로 다시는 그날, 그 한여름의 일상 한 조각을 그리워하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