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 포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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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공지능(AI) 서비스 딥시크 충격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 선언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한 섹터가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 섹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식에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겠다"고 해 에너지 분야에 대한 주목도가 커졌습니다.
에너지 비상사태라는 용어에는 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행정부가 주도해 화석연료 중심의 각종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현재의 에너지 가격을 '비정상'이라고 인식해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전 세계의 에너지 패권을 움켜쥐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취임 이후 중국의 딥시크 AI발 주가 급등락이 반복되고, 관세전쟁의 서막이 오르는 와중에도 에너지 기업 주가는 오히려 오른 겁니다.
에너지는 곧 안보…'자립'에 사활
에너지 비상사태 선언의 핵심은 '국가 에너지 자립'입니다. 에너지 자립을 통해 결국 AI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전 세계에서 기술패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곧 AI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죠.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사실을 다시 정리해보면,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AI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중요합니다. 구글에 온라인 검색을 한 번 할 때 평균 0.3Wh(와트시) 전력이 필요했다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모델은 검색당 10배에 달하는 2.9Wh의 전력을 소모하죠. 이미지나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AI는 텍스트 AI 대비 전력 소모량이 최대 60배에 달합니다.
2028년이면 미국의 AI 데이터센터만으로도 전체 전력의 12%를 소비할 예정으로, 4년 만에 현재의 3배 이상 증가합니다. 따라서 트럼프 2기 시작과 동시에 첫 주에 발표된 정책들이 모두 AI 인프라스트럭처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력 산업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DS투자증권은 "(트럼프 2기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AI 산업 규제 행정명령을 폐기하고,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초대형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를 발표했다. 정부 임기 초반 정책 드라이브의 초점이 AI 인프라 전력 사업에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대 5000억달러 우리 돈으로는 718조원을 투자할 것이라는 스타게이트가 바로 인프라 프로젝트입니다. 텍사스주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입니다.
AI 시대가 본격화돼서 투자를 늘리겠다는 의도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에너지 투자 확대가 곧 중국에 대한 견제구이기 때문입니다. 미·중 AI 전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은 중국에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 등 반도체가 수출되는 것을 제한하고, 각종 제재안으로 데이터와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의 수출도 통제해왔습니다. 그런데도 결론은 어떤가요? 엔비디아의 저사양 반도체 칩인 'H800' 2048개로 지금의 챗GPT보다 추론과 검색 능력이 더 뛰어난 AI '딥시크 R1'을 만들어냈죠. 1957년 당시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해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과 비견된다는 평가마저 나오는데요. 딥시크가 오픈AI의 모델을 무단 이용했는지 등은 차치하고, 미국의 제재를 뚫고 나온 의미 있는 기술 개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달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국가의 안보는 에너지에서 시작된다. 이전 바이든 정부는 에너지를 국가적 자산이 아닌 부채로 간주했다"고 비판한 것이 이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의 AI 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곧 중국이겠죠.
원전 에너지 '비상사태' 선언의 핵심
에너지 섹터 가운데서는 원자력 에너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 명령의 핵심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의 강화도 있지만, 원자력을 화석연료와 동일한 수준의 중요 에너지로 취급하겠다는 것이거든요. 원전 섹터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모멘텀이 확대될 핵심 섹터로 분류돼 왔습니다. 원전 관련 정책 강화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부터 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추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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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4분기 신규 원전 건설, 원전 재가동, 기존 시설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2023년 100.6기가와트(GW) 수준인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300GW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원전은 이제 트럼프 2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떠받들 중점 육성 섹터로 꼽힙니다. 라이트 장관은 "상업용 원자력과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형 발전소를 보유한 기업은 원자력 발전 1위 운영사업자인 콘스텔레이션에너지(CEG)와 천연가스 발전소를 보유한 비스트라에너지(VST) 등이 있습니다. 이들 주가는 지난해 이후 꾸준히 우상향해왔습니다. 다만 미국이 지난 30년간 원전 인프라 확충을 등한시했다는 점에서 원자력발전소 등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장기 상승세는 좀 두고봐야 합니다.
콘스텔레이션에너지가 지난해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의 상업용 가동을 2028년에 재개하겠다고 밝힌 것은 '데이터센터에는 원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장에 인식시키는 일종의 이벤트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소형모듈원전인 SMR 기업으로 눈을 돌리는 게 조금 더 현실적입니다. SMR은 건설 비용이 대형 원전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건설 시간이 짧아 원자력발전소 신규 확보보다 훨씬 더 빨리 구동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지난해 도미니언에너지 등 3곳과 소형 원자로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고, 구글도 원전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에서 향후 가동할 SMR 에너지를 자신들이 쓰겠다고 구매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90개 이상의 SMR 설계가 있습니다. 아직 상당수의 설계가 초기 개발 단계로 실제 기능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만든 SMR 기업 테라파워가 미국 내 첫 SMR 건설에 착수했죠. 테라파워는 2030년까지 SMR 실증단지를 완공한 이후 상업운전까지 돌입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석유 전문 매체인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60억달러(SMR 시장이 2024년 60억달러(약 8조7000억원)에서 연평균 3% 성장해 2030년 71억4000만달러(약 10조4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美 에너지부의 전략 에너지 기업 '오클로'
그중에서도 오클로에 대한 기대감이 큽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원자력, 미국 에너지부 등 오클로가 관통하는 단어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기업인수목적회사 스팩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우회 상장해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2013년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인 제이컵 드윗과 캐럴라인 코크런이 설립했죠. 오클로는 대학 캠퍼스 등에 들어설 정도로 규모가 작은 '오로라(Aurora)' SMR을 개발 중입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서 오클로는 자사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설계·건설·운영 등을 모두 포함한 '맞춤형 통합 자격 신청서(COLA)'를 성공적으로 제출한 유일한 회사로 소개합니다.
오픈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은 2014년부터 오클로에 투자해 왔고, 현재는 오클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올트먼은 CNBC와의 2023년 인터뷰에서 "향후 AI 사용은 계속 확장되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원자력 없이는 그 미래를 달성할 방법이 없고, 원자력은 현존하는 어떤 기술보다 효율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클로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미 아이다호주에 SMR 건설을 추진 중입니다.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과 사용 후 핵연료를 모두 쓸 수 있는 연료 시설을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내부에 건설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미국 에너지부의 구 원자로에서 회수된 핵연료를 재처리해 활용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까지 실제 실적은 없습니다. 지난해 1~3분기 오클로의 누적 순손실만 6332만달러에 달합니다. 즉 빅테크들의 SMR 구애와 함께 트럼프 정부의 원전 섹터 중점 육성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여 주가 상승을 이뤄냈다고 봐도 됩니다.
다만, 오클로가 '에너지 비상사태' 구호와 직접 연결되는 기업이라는 게 호재로 작용합니다. 즉,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정부가 육성하고 있는 대표 원자력 기업이라는 얘기죠. 오클로는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꾸준히 투자를 받고 있습니다. 2021년 에너지부로부터 200만달러(약 27억원) 규모의 기술사업화 기금을 지원받았고, 2022년에는 에너지부의 첨단 원자로 상용화를 위한 4개 프로젝트 중 한 곳으로 선정돼 82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았죠. 지난해 3월에는 원자력 혁신기술 촉진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부의 '게인(GAIN)' 프로그램에도 선정됐습니다.
현재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오클로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는 점이 회사에는 호재입니다. 라이트 장관은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수압 파쇄법인 프래킹 기업 리버티에너지의 설립자로, 리버티에너지는 오클로의 일부 지분을 보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오클로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 장관은 "오클로가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국립연구소에서 첫 SMR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것은 미국의 미래 에너지원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월가에서는 오클로를 향한 시선이 다소 나뉩니다. 웨드부시 애널리스트들은 AI 혁명 데이터센터 구축에 대한 신뢰가 높아짐에 따라 오클로 주식에 대한 목표가를 45달러로 상향 조정했지만, 씨티는 오클로에 대한 '중립' 입장을 재확인했죠. 지난 7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오클로는 55.49달러를 기록해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고, 주가 낙관론자들의 편에 서 있습니다. 오클로의 상승세는 미국의 에너지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미국의 에너지 패권을 위한 야심 자체가 오클로의 상승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홍성용 기자
홍성용 기자는 '네이버 vs 카카오' '메타버스3.0' 등을 집필하며 국내외 대표 플랫폼 기업을 꾸준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의 숨은 뒷얘기를 파헤친 '홍키자 빅테크' 시리즈도 격주 연재합니다. '돈 버는 테크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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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