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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45분 북한의 미그 19기 한 대가 연평도 상공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전국에 경계경보가 발령됐고, 공군의 전투기들이 대응에 나섰다. 발포할 필요는 없었다. 조종사인 이웅평 상위(한국군 중위와 대위 사이 계급)가 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군은 그를 수원 공군기지로 유도했고, 미그 19기는 오전 11시4분 무사히 착륙했다(사진). 북한의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지 30여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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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그 19기는 북한의 최신 전투기였다. 이를 몰고 온 보상으로 15억6000만원의 보로금(報勞金)이 지급됐다. 현재 가치로 60억원이 넘는 돈이다. 이웅평의 귀순은 큰 사건이었다. 남북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 그는 해안가에 떠내려온 라면 봉지에 적힌 ‘변질된 제품은 교환해 준다’ ‘계란을 풀어서 먹으면 좋다’ 등의 문구를 보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 사내의 실존적 결단은 이렇게 신화가 됐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불러오지 않듯 이웅평의 귀순도 혼자만의 비행이 아니었다. 76년 9월 소련 공군의 벨렌코 중위가 미그 25기를 몰고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83년 8월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시험비행단 소속 조종사가 미그 21 전투기를 몰고 한국을 통해 대만으로 귀순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철의 장막에 균열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이후 우리가 알던 세계 질서도 급변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협상에 나선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북한군 포로의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들이 한국행을 원한다는데 거대 야당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북한군 포로도 법적으로 우리의 국민이다. 살인 드론에 쫓겨 날아온 다친 제비들을, 대한민국은 끌어안아야 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