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사회에서 유의(儒醫)는 유학자가 의학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술을 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한학 능력을 갖추고 의학 경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 등을 읽으며, 침과 뜸을 익혀서 자신, 식구, 이웃의 건강을 돌보았다. 오늘날 지식인은 이럴 수 있는가? 한방과 양방이라는 치료법 차이, 중세에서 근대로 시대가 변해 이런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
보통 사람에게 건강과 의술은 묘한 관계다. 건강하면 의술에 관심이 없고, 아프면 의술에 관심을 가진다. 자신의 건강과 질병을 의료 종사자인 양의사, 한의사에게 온통 맡겨놓고 살아간다. 질병과 죽음의 해결을 완벽하게 타인에게 의지한다. 냉난방, 영양, 의술이 고도화되어 백세시대가 눈 앞에 펼쳐진다. 근대 극복의 다음 시대를 맞이해 몸뿐만 아니라 질병도 스스로 관리하는 문명 전환을 꿈꿔볼 만하지 않은가?
앞서 말한 유의(儒醫)에서 길을 찾아보자. <황제내경>, <동의보감>, <침구경험방> 등 의서와 해석서, 참고도서가 지금은 넘쳐난다. 침과 뜸의 기초는 아주 쉬워 누구나 배워 쓸 수 있다. 현대판 유의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이런 사람들이 민중 의술에 대한 사명감으로 많이 배출되어 있다. 다만 의료법에 저촉되어 활동이 엄격하게 제한될 뿐이다. 능력은 탁월한데 실정법이 가로막고 있다. 근대의 불합리가 중세의 합리성을 비웃는 꼴이다.
전통 의서는 천지만물과 인간을 이해하는 독특한 인문학을 담고 있다. 침술과 뜸술은 아주 쉬우면서 쓰는 데 비용이 적게 든다. 하늘 같은 의사가 하는 일을 스스로 하면서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다. 자기 삶과 죽음은 마땅히 자기가 관리해야 하지 않는가? 의학, 예방, 치료는 극소수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기존 생각을 바꿔보자. 침뜸술은 온 세상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맨손체조 같은 가볍고 유익한 몸짓이다.
한방 의학 이론을 노자 해석에 활용하면 막연한 것이 명쾌해진다. <노자> 6장은 해석하기가 모호하다. 계곡에서 물이 계속 나와 만물을 적셔서 살리는 기운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인가? 계곡을 암컷에 비유해 자손만대로 이어지는 근원이라고 말한 것인가?
谷神不死를 是謂玄牝이오 : 계곡 신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위대한 암컷이라 한다.
玄牝之門을 是謂天地根이니 : 위대한 암컷의 문은 천지의 뿌리이니,
綿綿若存하야 用之不勤이니라. : 이어지고 이어져서 써도 써도 지치지 않는다.
<東醫寶鑑> 外形篇 鼻에서 <노자> 6장을 입과 코로 절묘하게 해석하고 있다. 사람은 입으로 밥을 먹고, 코로 숨을 쉬어서 살아간다. 코로 하늘 기운인 공기를 마시고, 입으로 땅 기운인 음식을 받아들여 생명을 유지한다. <노자> 6장은 천지만물이 이어지는 원리를 말하고, <동의보감>에서는 이것을 코와 입의 작동으로 본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라는 것을 말하며, 생명은 하늘과 땅 기운으로 살아간다는 인체관을 보여준다. 門은 두 구멍인 코요, 戶는 하나인 입을 뜻해 묘하게 문자의 기운까지 느끼게 한다.
何謂玄牝之門이오? : ‘현빈지문’은 무슨 말인가요?
答曰鼻通天氣曰玄門이요 : 답하기를, 코로 천기가 통하는 것을 ‘현문’이라 하고,
口通地氣曰牝戶라 : 입으로 지기가 통하는 것을 ‘빈호’라 합니다.
口鼻乃玄牝之門戶也니라 : 입과 코는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통하는 문들입니다.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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