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4차원의 세계

2025-02-25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4차원(四次元)의 세계가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의 공간 세계는 3차원의 세계인데 여기에 시간의 차원을 더하면 4차원이 된다. 3차원의 세계에서 볼 때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만, 4차원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융합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한 4차원의 세계에서는, 생각만 하면 해인사에 앉아서 천리만리 밖에까지도 갈 수 있는 자유자재로 한 그런 세계이다. 학자들은 이 4차원의 세계를 신통자재한 홍길동의 이름을 따서 ‘홍길동의 세계’라고 표현하고 있다.

▲0차원: 점 ▲1차원: 직선- 점을 일직선으로 연결한 것. 길이만 존재 ▲2차원: 평면- 직선을 수직으로 확장한 것. 면적을 갖는다. ▲3차원: 입체- 평면을 수직으로 확장한 것. 부피를 갖는다. ▲4차원: 입체가 움직여 독립적(물리적 공간에는 없는)으로 정렬된 입방체

영국의 캐논 경(Sir Alexander Cannon)은 그의 ‘캐논 보고서’에서 눈이 없거나 시신경이 완전히 파괴되어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무의식의 세계를 개척하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고 남의 마음도 알 수 있다 하였다. 인간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여 뇌신경 세포의 활동에 관계없이 언제나 죽지 않는다. 설사 몸뚱이가 죽어 화장을 하여 몸뚱이가 없어져도 영혼은 독립해 있어서 윤회를 하고 환생을 거듭 하는 것이라 하였다.

아브로체프스키라는 소련의 심리학자가 정신과 정신 간에 서로 통할 수도 있다는 데에 착상하여 실험을 통하여 한쪽에서 어떤 생각을 강하고 간절하게 하면 그 정신의 반응이 상대편에게까지 도달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것을 텔레파시(Telepathy), 곧 정신감응(精神感應)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신감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동물이나 광물에도 작용을 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불교에 육근호용(六根互用)이라는 말이 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을 서로 바꾸어 가며 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귀로도 보고 또 눈으로도 듣는다(耳見眼聞)는 것이다. 이런 것을 ‘육근호용’이라고 한다. 중생이 번뇌 망상으로 육근이 서로 막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계에 도달할 수 없을 뿐이지, 실제로 해탈경계를 성취하면 무애자재(無碍自在)한 그런 경계가 나타나 육근이 서로서로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신과 물질을 떠나서 양변이 융합한 중도적인 유심을 말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유물론이나 유심론이 아니고 서로 융합해서 통하게 하는 물심불이(物心不二)의 중도의 시계라 하겠다. 결국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서로가 융합해서 통하게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남에게 이로운 것을 선이라 하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악이라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이란 선과 악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편견일 뿐, 선과 악이 융합하는 중도의 세계에 참 선(善)이 있다는 것이다. -[性徹 법어집] 제2편1장 불생불멸(不生不滅) 2. 색공(色空)의 세계에서 참조

김동수<미담문학회장/시인/전라정신연구원 이사장>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